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34화 잠깐 죽는 약
수면내시경 검사 과정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이 계셔서 설명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내시경 차례를 기다리시던 000 님이 갑자기,
-수면 그게 자주하면 아주 안 좋아요!
네에?
-수면약 그게 안 좋은 거라니깐.
수면 내시경 할 때 쓰는 약은 잠깐 동안 잠만 자는 약이에요.
특히 다음 말씀이 검진을 기다리는 분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니까 그게 잠깐 죽는 거 아뉴?
네?
-기억이 안 나잖우. 그러니까 잠깐씩 죽이는 거라고. 그러니 안 좋지이! 쬐금 참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서 나는 수면 내시경 안 한다)
네에? 아니 참, 죽기는 왜 죽어요. 안 그래도 저~번에 한 분이 검진을 받으러 오셔서는 수면하다 죽은 사람이 77%라고 뉴스에서 봤다고, 위험해서 수면을 어떻게 하냐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또 뭔가 싶어 인터넷을 뒤져 봤지요. 내용은…
최근 5년간 마취사고 의료 분쟁은 105건입니다. 전신마취가 50건인데 수면마취도 39건이나 됐습니다. 특히 수면마취사고 39건 중 30건(76.9%)에서 사망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전신마취사고의 사망률 82%(50건 중 41건)와 비교할 때… (2015년 기준)
이걸 또 한 TV뉴스에서는
특히 전신마취 사고 뒤 사망률이 82%, 수면마취 사고 뒤 사망률이 77%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라고 방송했으니 듣기에 따라서는 '수면마취 사망률 77%'로 들릴 만도 하기는 했던 것이다. '사고'는 쏙 빠지고 말이다.
이런 건데… 보세요, 수면내시경 사망률 77%면 4명 중에 3명이 죽는다는 얘긴데 여기만 해도 매일 평균 2명 이상이 수면으로 하거든요. 그럼 이틀에 3명, 일주일이면 검진 없는 수요일 하루 빼고 5일 해서 7.5명, 일 년이면 52주. 휴가, 설, 추석 빼고 50주라 치고 7, 5, 35에 5, 5, 25면 350에 25. 375명! 한 해에 4백 명 가까이가 수면내시경을 하다가 죽어 나가면 그럼 이 검진센터가 남아나겠습니까?
- … … …
내가 갑자기 너무 흥분했고 그리고 검진센터는 일순 고요해졌으며 잠시 뒤 000 님은 그 숙연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내시경실로 들어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