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90화 기준이 뭘까?
3월이면 비교적 한산하고 여유도 조금 있었는데 요즘엔 연말인가 싶을 정도로 바쁠 때가 적지 않다. 채용검진이 특히 요맘때 많기도 하고 일반검진의 대상자가 '20세부터'로 확대된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지난 회의 첫 문장이다. 검진 대상자나 검진 항목이 확대되는 것은 건강검진의 눈으로 보면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의 긍정적, 부정적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계신다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이해하시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의료 현장에서는 분초를 다투며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의료진이 없어서 받을 수 있는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게도 엄연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공의 예산을 다루는 일은 라면 하나 뚝딱 끓여 먹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할 것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서로 다른 이해와 관계, 과정이 얽혀 있을 것이고 그만큼의 지식과 경력, 권한을 가진 분들이 계획하고 결정하고 집행할 것이다. 그분들이 정하는 기준은 긴급성, 중요도, 범위, 비용 대비 효과 등등 필요와 조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해서 나의 얇디얇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놓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잘 알지는 못해도, 그래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지 않나? 지지지난 회부터 그 얘기가 하고 싶었다. 써 놓고 보니 딱히 재미도 없고 정리도 안 되었다. 해서 쓰다가 포기하고 쓰다가 못 끝내고 결국 미루고 또 미루었다. 그러다가 마침 한방의 의료보험 급여 확대 소식이 들려서 답답한 마음에 의문점만이라도, 그냥 털어놓기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20세부터’ 건강보험 대상자 확대가 그렇게 절박했나?
한방의 의료보험 급여화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중증외상센터의 만성 적자, 흉부외과, 산부인과 의사 부족, 간호사 부족과 태움, 의료 인력의 과로, 의료 전반의 저수가 문제는 얼마나 덜 절박하고 얼마나 덜 중요한가?
정말 어려운 문제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말이다. 3월의 한가운데, 내가 아는 거라고는 끝물의 겨울이 대체로 그랬듯이 한두 번은 더 시샘할 거라는, 다 아는 그런 것들뿐이다.
드디어 다시 제라늄을 장만했다.
아, ‘다시’라는 말은 빼자. 처음에는 내가 산 게 아니니까. 아무튼 이 사연 많은 제라늄(※사연은 여기)은 원래 있었던 검진센터의 접수대에 놓았다. 제라늄을 살 때 남천과 황금마삭도 같이 들였는데 둘은 작업실에 두었다. 생명체가 늘어나서 그런가? 분위기가 괜찮다. 이놈들은 그냥 키우기 쉬운, 같이 살기 편한 기준으로 골랐다. 예쁘기로만 보면 더 끌리는 것도 많았는데.
역시나 기준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