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21화 검진 주기 악순환설
연말이란 말을 쓰기엔 너무 이른 10월, 하지만 검진 센터에선 벌써 연말 냄새가 난다.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검진하려는 분들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더 바빠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단의 메시지도 한몫하는 것 같다. ‘10월 이후에는 40% 이상의 수검자가 집중되어 검진받기 불편할 수 있으니’ 미리미리 검진하시라는 안내 문구가 ‘9월 30일 전에 검진하지 않으면 40%의 불이익이 발생’한다는 괴담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렇게 연말로 갈수록 자주 벌어지는 일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검진 주기가 엉키는 모습인데 나는 이것을 ‘검진 주기 악순환설’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18년도 검진 대상자가 그해에 검진을 하지 않았다(못한 것도 마찬가지). 그런데 40%의 불이익, 검진을 안 하면 나중에 병이 생겨도 치료를 못 받는다는 등의 말들이 들린다. 불안하다.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한다. 18년도 미수검을 확인하고 19년도 대상자로 만든다. 검진한다. (누구나 이럴 수 있다. 문제는 내년이다.) 검진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자연스럽게 미룬다. 그러다 해를 넘긴다. 찜찜하다. 또 공단에 연락한다. 다시 대상자로 만든…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예약할 때, 검진에 관해 물어보실 때는 언제나 생년을 먼저 확인한다. 검진 대상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물론, 이미 검진을 하셨는지, 일부만 하셨는지, 간암, 폐암 검진 대상인지 등은 조회 창을 열어 봐야 알 수 있다. 아무튼, 작년에 안 한 검진을 지금이라도 해야겠다는 분들에게는 먼저 건강보험공단(1577-1000)의 상담사와 통화하셔야 한다고 알려 드린다. 그리고 연말로 가면 갈수록 이런 오지랖이 발동한다.
근데 어차피 내년에 또 검진이 다시 다 나올 텐데… 그럼 하신 지 얼마 안 되니까 내년 꺼는 또 미루시기 쉽잖아요… 그니까 그러지 마시고 (별 이상이 없으시면 올해는 그냥 보내고) 내년에 일찍 검진하시는 게 어떨는지…?
이런 주제넘은 짓은 이제 끝내야겠다. 60년생으로 지금까지 검진을 한 번도 안 하신, 아픈 데도 없었던 000 님은 자꾸만 뭐가 오고 그런 게 귀찮고 성가셔서 하는 수 없이 공단에 연락해 대상자로 만들고 저번 주에 생애 처음으로 일반 검진, 위암 검진(위내시경 검사), 대장암 검진(분변잠혈 검사)을 하셨다. 일주일이 지난 오늘, 내가 받아 본 조직 검사 결과지에는… 위암.
해서 121화 제목도 고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