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84화 궁금하다
접수대에 앉아있노라면 가끔 대체 왜 그럴까 싶을 때가 있다. 그중 하나가 검진하러 오실 때는 꼭 한꺼번에 오신다는 점이다. 아무리 바빠도 한 분씩 오시면 견딜만하다. 그런데 검진이 한산한 요맘때도 그런 일이 잦다 보니 왜 그럴까 궁금했었다. 일부러 모여서 오시지는 않을 테고, 그냥 우연이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다. 내가 있는 검진센터가 5층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 걸어 올라오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5층. 결국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다 보니 그러시는 거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튼, 오늘도…
성함이?
-000
아, 오늘 9시 예약하셨네요.
-응.
생년월일이?
-000000(주민등록번호 앞자리).
전화번호가 010에 0000 맞으세요?
-응.
오늘 위내시경 결과는 설명을 듣고 가실 거예요. 근데 검진 결과는 다시 다 우편으로 보내드려요. 결과 받아보실 주소가 00로 0번길 00, 맞으시구요?
-응
잠시만요. (검진 조회를 한다)
오늘 1차 검진하고 위내시경. 검진 비용은 따로 없고… 혹시 분변 가져오셨나요?
-응.
그럼 분변통은 저기 파란 바구니에 두시구요. 여기다 소변 좀 먼저 받아 주세요.
- …
화장실은 복도 끝 오른쪽에 있습니다.
- …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단답형 반말을 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문진표 작성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 혈압, 당뇨! 풍! 아니! 끊었어! 30년! 한 갑! 아니! 일주일에 한 번! 한 병! 아니! 2시간!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