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그만할 권리

연말에는 짜증과 안타까움이 뒤섞일 때가 많다. 이날도 그랬다. 접수가 많이 밀려있을 때였다. 턱! 갑자기 분변통을 꺼내 접수대에 힘껏 내려놓으시고는 한마디 하신다.

 

-나는 이것만 하면 되는데.

거기(순서표) 성함하고 생년월일 적어주세요. 그리고 기다려주세요. 보시다시피 연말이라 많이 밀려서…

-나는 이것만 하면 된다니까.

그니까요. 앞에 지금 기다리시는 분이 많습니다.

-이것만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렵나? 빨리 해주지이.

지금 한 시간 이상 기다리신 분들도 계십니다. 양해해주시고 순서대로 기다려주세요.

-아~이, 나는 시간이 없는데… 빨리 가봐야 되는데…

 

어쩌라구요? 누구는 시간이 넘치나요?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오후에 병리 선생님이 샘플을 정리하다 보면 접수도 안 하고 그냥 놓고 가신 분변통이 나오기도 한다. 번거롭고 짜증이 나는 일이지만 안타깝지는 않다. 정말 안타까운 건 이런 거다. 연세가 90이 넘는 분이 검진을 받기 위해 오신다. 물론 보호자와 함께.

 

-올해 안에 받아야 한다는데… 검진을 받으려면 어떡하죠?

지금 위내시경은 예약이 다 차서 여기서는 안 되시는데요. 해당되는 검진을 다 받으시려면 가능한 다른 곳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안 받으면 안 되나요?

그게 된다 안 된다 말씀 드릴 수 없는 게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요.

-꼭 받아야 한다는데… 안 받으면 불이익이 생긴다는데…

하아~(한숨), 글쎄요, 그게… 올해 못 받으신 거는 내년에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하셔서 다시 받게 해달라면 해주거든요. 다시 대상자로 만들어주는 거죠. 그래서 대상자가 되면 그걸 갖고…

밀리는 와중에 설명이 길어지니 기다리시는 분들의 눈치가 보인다.

 

-근데 이 나이에 꼭 받아야 하나요, 위내시경 같은 거를? 어머님 연세가 90이신데…

아아~~, 그게 제가 의사도 아니고 공단 직원도 아니고…라고는 차마 못 하고 이렇게 대신한다.

 

의사협회 권고안이란 게 있어요. 위내시경은 74세, 대장내시경은 80세 이상은 권해드리지는 않아요. 검진을 하고 안 하고가 별 차이가 없다네요. 대단한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검진이란 게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 비용을 줄이자는 건데 말이죠. 후우~ 그래서 말씀인데 오늘은 금식하고 오셨으니까 일단 일반 검진은, 그니까 피검사, 소변 검사, 흉부 엑스레이, 키, 몸무게, 시력, 청력, 혈압 재고 뭐 이런 거는 받으시구요. 유방암, 자궁암검진도 그렇고 암검진은 필요하시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년에라도 공단에 전화하셔서 다시 대상자 만드시고 여유 있게 예약 잡고 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럼 그럴까요?

 

 

 

검진은 몇 살까지 받는 게 정답일까? 놓친 분변잠혈 검사 하나 때문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언제까지 노심초사 불안해야 하나?

 

그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