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15화 깨진 액정과 늙은 눈
검진결과 통보서는 검진의 종류에 따라 쪽수가 달라진다. 일반검진만 3쪽, 암 검진은 각각 1쪽씩, 그밖에 인지, 정신건강, 생활 습관 등은 할 때마다 추가된다. 쪽수가 다르면 무게도 달라지고 그 무게에 따라 우편 요금도 달라진다. 3쪽 이하(25g 이하)는 380원, 8쪽(50g 이하)까지는 400원. 51g이 넘으면 590원이다. 지난 5월 우편 요금이 인상되기 전에는 우표를 왕창 사다가 붙이고 발송했었다. 당시에는 그게 편했다. 딱 두 종 330원, 350원만 나누면 되었기 때문이다. 인상되고 나서는 요금 구간도 바뀌었고 당시에는 새 우표도 안 나와서 이전에 쓰던 우표를 일일이 나누어 붙이는 게 신경 쓰이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무게만 구별해서 우체국에서 발송한다. 다행히 바로 길 건너에 우체국이 있다. 또 나 한 사람만 가면 되고 어차피 나는 점심을 나가서 먹으니 가는 길에 부치면 되는 것이다.
석 달 전쯤 그렇게 발송하고 우체국을 나서는 길이었다. 잔돈과 영수증이 든 작은 지퍼백을 들고 서류 봉투(왜 그걸 들고 나갔는지는 기억이 안 남)를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나오는데 하필 그때 전화가 왔다. 핸드폰은 바지 왼쪽 앞주머니에 있었고 오른손으로 꺼내 왼손(전화는 항상 왼손으로 받는 버릇이 있음)으로 옮겨 받으려다가 발이 꼬이고 그만 자빠졌다. 속으로 욕을 한마디 하고 일어났다. 몸을 추스르고 보니 액정에 금이 간 것이 보였다. 한 번 더 욕이 나왔다.
※그림에서는 금이 잘 보이게 과장함.
전화나 문자 메시지, 온라인 구매 정도의 용도 말고는 다른 필요가 없어서 지금도 금이 간 상태로 쓰고 있다. 예전 같으면 당장 핸드폰을 바꿨을 텐데 말이다. 금이 간 곳에 손가락으로 문질러 봐서 뭐라도 걸리는 느낌이 나면 불편하고 또 완전히 깨질 위험 때문이라도 바꿀 텐데 그런 것도 없이 매끄럽다. 그래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놀라운 것은 내가 금이 간 화면을 딱히 거북하게 느끼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게 복선이었을까? 한 보름 전쯤 눈앞에 뭔가 떠다니는 게 보이는 날파리증(비문증)이 왔다. 솔직히 처음엔 정말 늙어간다 싶어 며칠 동안 우울했다. 지금은 금 간 화면의 핸드폰처럼 그냥 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또 그렇게 거슬리지도(!)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또 막 심각하게 그러지는 않는, 그냥 좀 그렇고 그렇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 탓인지 성격 탓인지 암튼 이미지에 ‘강박’이 좀 있는 내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한편으론 좀 신기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이 날파리를 시원하게 잡을 수 있는 극적인 치료법이 현재로선 없다는 점이다. 없는 데 내가 무슨 수로?
그냥 내게 부정적인 거는 이제 신경 좀 끄고 살기로. 다른 것에 집중하기로. 예를 들면 만화 작업 같은! 으흠(찔림).
그건 그렇고. 근데 4인치 핸드폰, 작은 핸드폰은 이제 진짜 안 나올 건가? 그냥 중고를 사? …흠, 2년째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