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49화 부부란?
참 다정다감한 노부부이시다. 부인의 검진을 기다리는 동안 남편께서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이해가 안 가. 돈이 얼마나 든다고 검진을 안 받아 그래. 아는 사람이 얼마 전에 암이라 그러는 거야. 근데 80 평생을 검진 한 번 안 받았데요. 거 왜 그럴까? 검진이 뭐 치료하는 건가, 그냥 확인해 보는 거지. 돈이 들어도 확인해 볼 텐데 그러네그려.
그러게요. 미국에서도 평생 내시경 한 번 못 받고 죽는 사람도 많다는데, 2년에 한 번 나오는 검진만 받으셔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그니까, 아니 자꾸 돈이 든다고 그러는데, 검진하는데 무슨 돈이 들어. 그래 봐야 만 몇천 원인데.
그렇죠.
-돈이 들어도 안 들게 하는 방법도 있지.
네? 좋은 거 있으면 가르쳐 주시죠. 하하.
-흐흐, 야메로 하는 거야.
예?…??
-나는 치과에서 치료를 깨끗하게 받고 틀니는 야메로 했어. 반값이면 되거든.
아아 네, 헤헤헤
-위에는 다 틀니고 아래는 이거 네 개 빼고.
… …
-이 사람이 귀가 안 좋아. 그래 같이 왔지. 나도 배고파. 이 사람 검진한다고 아침을 안 먹잖아. 나만 먹을 수 있나. 그래서 같이 굶었더니 아주 배가 고프네. 허허허…
아~, 하하. 네, 끝나고 맛있는 거 드셔야겠네요.
그렇게 검진을 다 하시고 오실 때처럼 다정한 모습으로 가시고 나서 또 다른 노부부가 오셨다.
-빨리 좀 오지.
-주차하고 오는 거 뻔히 보고서는 그랴!
-(사물함을 가리키며) 옷 여기다 같이 넣어요.
-모자를 밑에다 넣으면 어떡하누. 눌리잖아.
-잠깐인데 뭐 어때. 여기 소변 컵.
-올라오다 볼일 봤는데.
-아니, 검진받으러 오면서 화장실 갔다 오면 어떻게 해?
-나, 이거 참!
역시 세상에는 참 다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