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52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2
‘단, 콜레스테롤(4종) 검사는 남성 만 24세 이상, 여성 만 40세 이상에 대하여 4년마다’…
이것은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건강검진 실시기준’에서 따온, 일반검진의 혈액검사 항목의 하나인 콜레스테롤(고지혈) 검사의 실시 시기에 대한 설명이다.
2018년도 건강검진이 이전과 비교해서 바뀐 부분이 많다는 점은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라고 할까, 바로 이 콜레스테롤 검사가 바뀌었다. 일단 ‘4년마다’가 단박에 눈에 들어온다. ‘2년마다’가 ‘4년마다’로 바뀐 것인데 언뜻 봐서는 별 다른 차이를 못 느끼실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의 체감은 확연하다. 일단 내가 검진 대상자이면 늘 받던 콜레스테롤 검사 횟수가 반으로 줄었다고 보시면 된다. 왜냐면 대부분의 검진이 2년 주기니까. 게다가 직장가입자 중 비사무직은 1년마다 일반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홀수년도 생 수검자는 올해가 짝수년도이므로 모두 콜레스테롤 검사는 ‘비해당’ 즉 콜레스테롤 검사가 빠졌다는 말씀이다. 물론 내년에는 반대로 짝수년도 생이 못 받는다. 두 번째는, 이건 더 이해가 안 되는데, 남녀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남성은 만 24세부터, 여성은 만 40세부터라니? 만성질환의 남녀 차이? 이렇게 바뀌고 축소된 근거는 지난 2월 초에 했던 건강보험공단의 설명회에 들은 ‘고지혈 유병률 5% 이하…’가 다다. 녹음한 것도 아니고 너무 추워서 그랬는지 설명회의 분위기도 다소 어수선한데다가 기억력도 별로인 내가 엉뚱하게 들었을 수도 있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다만 그 뒤로 관련 자료를 뒤져보고 통계도 찾아봤지만 ‘유병률 5% 이하’가 어디서 나왔는지 무엇을 근거로 했는지 내 짧은 머리로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짐작하시겠지만 이와 관련된 수검자의 불평불만을 검진센터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고스란히 내가 듣기 때문이다,
-왜 콜레스테롤 검사가 없어요?
-왜 나는 비해당(해당없음)이야?
-누구 맘대로 검사를 줄여?
-콜레스테롤약을 먹고 있는데 따로 또 돈을 내고 검사를 하라고?
-아니 그렇게 (건강보험료를) 걷어다가 대체 어디다 쓰는 거요?
-(의료가) 더 나아진다더니 이게 뭐야?
※현재 일반검진의 청구비용은 37,000원 정도, 이 중에 콜레스테롤(총콜레스테롤, HDL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검사 비용은 11,300원이다. ‘정도’라고 쓴 것은 토요일, 공휴일 가산료, 흉부엑스선 촬영방법에 대한 청구비용 차이, LDL콜레스테롤(6,460원) 추가검사 여부에 따라 청구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