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35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똑같이 검사했는데 왜 저 사람은 결과가 없어요?
네? 그거 좀 보여주세요.
000 님과 000 님은 부부다. 지지난 주에 일반검진(피검사, 소변검사, 흉부 엑스레이, 혈압, 신체계측 등)을 하시고 장 비우는 약을 타 가셨다. 오늘은 두 분 모두 위내시경과 장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한 날이다. 내가 받아 든 것은 저번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 통보서로 내시경 검사 전에 물어봐야겠다며 가지고 오셨다. 살펴보니 부인의 통보서에는 콜레스테롤 검사 결과가 없었다.
이게… 000 님은 콜레스테롤 검사 대상이 아니십니다. 안 나왔어요. 그래서 결과가 없네요.
-그게 뭔 말이래. 우리 둘 다 검진이잖우?
그게, 이 건강검진이 올해부터 바뀐 게 많아서요. 콜레스테롤검사가 해당이 안 되는 분들이 계시네요.
-나는 되는데 저 사람은 안 된다고?
전부 해당 되는 게 아니라서요. 되는 분이 있고 안 되는 분이 있고.
-왜 그래요?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여기서 모르면 어떡해?
그러게요. 궁금하시면 건강보험공단에 문의해보십시오. 저는 모르겠습니다.
건강검진도 매년 조금씩 바뀐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일하는 동안 바뀐 것은 검진수가나 통보서 양식 정도였다. 올해처럼 많이 바뀐 것은 처음이다. 콜레스테롤 검사가 2년에서 4년에 한 번으로 변경되었다. 64년생 여성, 골밀도검사가 추가되었다. 고혈압, 당뇨 2차 검진이 없어지고 확진 검사로 바뀌었다. 40세, 66세 생애전환기 2차 검진도 없어졌다. 생애전환기 2차 검진에 나오던 생활습관, 인지기능, 정신(우울증) 등의 문진은 40세, 50세, 60세, 70세 1차 검진에 포함되었다. 그밖에 바뀐 내용은… 다 얘기하기에는 양에 비해서 재미가 너무 없으므로 ‘검진실 블루스’를 통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안내해드리는 것으로 양해를 구하고 마무리해야겠다.
올해 1월은 확실히 예전과 달랐다. 1월 2일 청구코드 중 검사항목 코드가 갑자기 바뀌어 난리가 났었다. 바뀐 코드를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고치느라 병리 선생님은 며칠 동안 미칠 지경이셨다. 나 역시 바뀐 건강검진 항목을 매일 한둘씩 알아갈 때마다 투덜거리며 1월을 보냈다. 바뀐 내용을 어지간히(전부 다가 아니라) 파악했을 무렵인 어느 날 2월 5일, 그 바뀐 내용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교육받았다. 안 그래도 무척 추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