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7화 동갑내기 비교하기
오늘 검진하러 오신 분 중에 네 분이 나와 동갑이다. 공교롭게도 한 분은 주민번호 앞자리까지 같았다.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 오시면 나도 모르게 비교하게 되는데 오늘따라 동갑이 많으니 호기심이 더 발동했다. ‘라테는 말이야’ 고무줄 호적에다 음력까지 섞여서 진짜 동갑은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가장 먼저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외모. 머리카락 숱, 눈가의 주름, 배가 나왔나, 피부의 윤기는… 등등. 같은 시대를, 거의 같은 시간만큼 산 사람으로서 누가 더 나이 들어 보이나, 젊어 보이나 따지는 본능 같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그건 당연히 알 수 없으니 비교의 근거는 내가 지금 보고 느낄 수 있는 외모와 말투, 행동 그리고 검진 결과이다.
나를 포함한 5명의 표본은 통계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겠지만 일단 보자. 아참 나는 아직 올해 검진을 안 해서 2년 전 결과를 집어넣었다.
5명 중에 2명 과체중. 1명은 비만. 1명 탈모. 투약 중이 3명. 나는 고혈압, 고지혈, 1명은 당뇨와 기타. 1명 고혈압, 당뇨, 고지혈. 암은 1명, 바로 나.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리는 한국의 현실에 비하면 낮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암 가족력을 가진 3명을 합치면 어느 정도 이해할 만. 위내시경 결과는 5명 모두 위염. 2명이 만성표재성위염 경증, 2명 중등도, 1명 미란성 위염. 네 분 중에 두 분은 대장내시경도 하셨는데 1명은 용종 제거. 운동 쪽을 보면 2명은 신체 활동 부족. 4명이 근력 운동 부족. 흡연은 1명. 4명이 음주. 대충 이 정도를 당일에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엑스레이와 혈액, 소변 검사 결과 등이 나온 걸 정리하니 2명이 간수치가 약간 높았고 흉부 엑스레이 결과 1명이 코로나 이후 특히 많아진 판독 결과인 ‘과거 염증 흔적’이 보였다.
종합하면 약을 안 드시는 2명 중 1명이 당뇨 경계치, 1명이 콜레스테롤과 혈압이 경계치였고 더 범위를 넓혀 분변잠혈검사, 유방암, 자궁경부암 결과까지 다 모아보니 분변잠혈검사를 하신 2명 모두 음성(정상)이 나온 걸 빼면 ‘염증이 있다, 관리 요한다, 약을 계속 드셔라. 언제 재검해 보시라’ 등 토가 달렸다. 다시 말해 분변잠혈검사 항목을 제외하면 5명 중에 단 1명도 ‘특이소견 없으시나 정기적으로 검진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사실상 ‘정상’ 판정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해서 다음과 같은, 누구나 알만한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정상이 아닌 게 정상인 나이가 되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꽤 썼으니 관리나 잘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