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61화 꼭 해야 해요?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 말씀하세요.
-내시경을 꼭 해야 해요?
흉부엑스레이 촬영을 기다리시던 000 님이 물어보셨다. 묻고 계시지만 실은 안 해도 되지 않냐는, 안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가벼운 항의에 가까웠다. 접수할 때도 그러셨다. 나이가 있는데 이제 다 늙어서 유방암, 자궁암 그런 거 뭐 하러 하냐고!
내시경 검사를 자주 한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근데 아시다시피 건강보험이 강제보험이라 2년마다 계속 나오고 선택의 여지가 없기는 하죠. 근데 또 그건 그거대로 장단점이 있겠지요.
-나이가 80이 넘었는데 꼭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의사협회에서는 위내시경은 74세 이상, 대장내시경은 80세 이상이면 하시나 안 하시나 별 차이가 없다고, 확실한 이득이 없다고 하기는 해요.
근데 얼마 전에도 뉴스에 나왔지만 유명한 소설가 한 분이 올해 84세신데, 지난 3월에 대장암 진단받고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그런 거 보면 그게 참, 하지 말자고 하기도 그러네요.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렇기는 하죠.
-그러니까는 아프면 아픈 데로 그때그때 치료하고 그러다 죽으면 그만이지. 힘든데 왜 꼭 검진하라고 하는지. 그건 아닌 것 같애. 안 그래요?
그러게요. 내가 선택할 수가 없으니까…
당연히 공감대와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동으로 검진 대상에서 제외가 되면 어떨까? 계속 받고 싶은 분은 따로 신청해서 유지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