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71화 주소도 없고
프린터로 뽑은 건강검진 결과통보서를 병리 샘이 작성하시는 검진기록과 대조한다. 수검 날짜, 이름, 항목 등등 다 맞는지 혹시 빠진 것은 없는지 확인한다. 그렇게 발송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받는 사람의 주소가 없는 통보서가 나왔다. 000 님의 것이다. 잠깐 뭐지 싶다가 하나둘씩 기억났다.
모니터에 메시지창이 연신 뜬다. 내과에서 보낸 거다. 그런데 메시지만으로는 무슨 일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냥 내과 내선 번호를 누른다. 띠~
000 님? 이게 무슨 말이에요?
-아. 이제 찾았어요. 000 님, 에이~ 12월 00일(토요일)에 예약하신 분이네. 근데 오늘(토요일)로 알고 오셨어요. 아이고~ 할 수 없죠, 뭐. 늦더라도 (중간에 끼워서) 해주세요.
어떻게 두 달이나 착각하실 수 있지? 000 님이 오셨다.
-아니 나는 예약했는데, 하루 이틀 언제 오라 그러나 요렇게 기다리는데, 하도 전화가 없는 거야. 그래서 왔어.
며칠 전에 예약하셨다면서요? 그럼 오늘로 예약을 하셨을 리가 없는데. 많이 밀려 있어서.
-오늘로 했어. 근데 기다리고 기다려도 전화를 안 주는 거야.
예약하신 날짜는 12월 00일 토요일이래요, 다 다음 달이요.
-그니까, 토요일! 오늘로 잡았다니까. 그래 온 거야. 내시경 할라고.
아예 내 말을 듣지 않으신다. 차트를 보니 주소란에 ‘□□1동’만 덩그러니 있고 번지수가 없다.
…주소는 어떻게 되세요? 결과지를 받기 편하신 주소요?
-저기 1단지 그 앞이야. 저기 그 아래 신작로 있잖아, 거기.
(신작로!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인데 그나저나) 번지가 어떻게 되는데요?
-몰라 그거는. 아이고, 하하하. 그 저기 △△△△가 있잖아 왜, 거기 아랜데…
번지수를… 모르신다고… 아…
전화번호도 000 님의 핸드폰을 받아서 내 번호를 눌러 확인해야 했다. 혹시나 했는데 차트에 있는 번호와 한자리가 달랐다. 검사를 잘 하실 수 있을까 걱정까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12월에 다시 오시라고 하는 게 더 무리일 것 같아서, 그래 차라리 지금 하시는 게 낫겠다 싶었다. 끝내 주소를 확인하지 못하고 접수했다. 가시기 전에 어떻게라도 주소를 알아내면 되겠지 했는데.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내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