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06화 체감과 현실 사이
두 달 전쯤 공단으로부터 작년에 발생한 분변잠혈검사 이중수검 1건에 대해 11,740원을 환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니까 한 분이 2018년 한 해에 같은 검진을 두 번 하신 것이다. 보통 연초에 일찍 검진하신 분 중에는 2, 3월 전후에 전국적으로 일괄 발송되는 건강검진 안내서를 받으면 ‘어라? 또 나왔네, 이게 진짠가?’ 등등 별다른 의심 없이 검진을 다시 하는 분이 종종 있다. 공단 사이트에서 대상자 조회를 하면 이미 받은 항목은 체크 또는 수검 완료로 표시되어 이중수검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먼저 검진한 기관에서 체크(또는 청구)를 하지 않거나 늦게 하면 나중에 열어본 기관에서는 당연히 안 받은 거로 알고 검진을 진행할 수도 있어서 위와 같은 사달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주의하고 또 주의해서 줄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조심해도 실수는 일어난다.
아무튼 이 일이 있고 나서는 분변만 가져오시는 분에 대해 더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그냥 놓고 가시는 분도 있으니 참 아무것도 아닌 일이 참 어렵기도 하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분변잠혈검사(대장암)만 하시더라고 꼭 접수하고 문진표를 작성하시길 부탁드린다. 귀찮으시면 거기 있는 직원에게 그냥 도와달라고만 하셔도 되겠다.
000 님이 분변을 가져오셨고 오늘도 나는 접수하고 문진표 작성을 도와 드린다.
…
최근에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살이 빠진 적 있으세요?
(※원문: 최근 6개월 간 특별한 이유 없이 5㎏ 이상의 체중감소가 있었습니까?)
-아까 그랬잖어, 요새 괜히 힘들고 피곤하고… 그래서 살이 쫙 빠졌어.
그래서 얼마나 빠지셨는데요?
-얼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암튼 많이 빠졌지.
전에는 몇 키로셨는데?
-55키로는 나갔지이.
지금은 몇 키로신데요?
-요즘은 통 안 재봐서 몰라.
…흠.
이쪽으로 오셔서 여기 신발 벗고 올라가서 저를 보고 서 주세요. 몸무게 좀 재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