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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물증

-내가 내일로 예약했는데. 평소에 변 보기가 어려워서 오늘 본 김에 받아가지고 왔어.

아, 네. 그럼 오신 김에 오늘 유방암, 자궁암 검사도 하시겠어요?

-아니, 다른 거는 내일 할라고.

 

어제의 일이다. 그래 맞다. 어제 내가 그랬다. 분명하게 기억한다. 다만 ‘어제의 나’는 내일 예약자 명단, 즉 오늘 예약자 명단을 몰랐으므로 당연히 예약하신 분이겠거니 생각하고 내일, 그러니까 오늘 오시라고 한 거다. 그런데 지금, 어제의 내일인 오늘, 접수하려고 보니 눈앞에 있는 예약자 명단에 000 님은 없다. 어찌 된 일인가?

 

-어제 내가 오늘 오겠다고 했잖어.

그러시기는 했지요. 제가 접수했잖아요. 근데, 여기 예약 명단에 없어요. 보세요. 예약하신 날짜가 오늘 맞나요?

-(네가) 오늘 오라고 그랬잖어.

그랬지요. 근데 언제 예약하셨어요?

-오늘이여.

아니, 검진하기로 한 날 말고 그 예약을 언제 잡으셨냐 구요?

-오늘로 잡았지.

그 말이 아니고, 예약을 어디서 하셨냐고, 여기서? 혹시 제가 잡아드렸나요?

-아니, 그 여자가 했는데. 그이는 어디 갔대? 안 나왔어?

잠깐만요. 여기 앉아있던 여선생님한테 예약하셨어요? 오셔서?

-아니 여기가 아니고, 아래(3층 내과)에서.

언제 잡으셨는데요?

-오늘로 잡았다니까.

아니, 예약날짜 말고. 3층에 오신 게, 그 변통 받으신 게 언제냐구요?

-그저껜가? 그때 받아가고. 어제 가져왔잖아. 내가 변을 자주 못 봐. 그래서 어제 봤을 때 가져온 거지.

네, 맞아요. 근데 그때는 오늘로 예약하실 수가 없어요. 꽉 차 있어서. 혹시 예약지, 그니까 예약한 날 날짜하고 시간 써서 드린 거 가지고 계세요?

-여기 있어.

87 물증 copy.jpg

?! 오늘이 아니라 3월이었다. 3월 16일. 오늘은 2월 16일. 그렇게 쓰여 있는 데도 오늘이다, 아니다, 맞다, 아니다 실랑이가 오고 갔고. 그러던 중에 나의 뇌리 저 깊숙이 박혀있던 기억이 깨어났다. 그래, 예약하신 날보다 먼저 오셔서 끝내 위내시경까지 검진을 다 하고 가셨던. 두 번이었는지 세 번이었는지 그거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므로.

 

이번엔 실패하셨다. 거의 넘어갈 뻔했는데. 그놈에 예약지를 가지고 오시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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