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2화 속 쓰림
오랜만에 위암 검진을 했다. 오랜만에?! 검진 받으시라고, 연말 북새통을 피해 미리미리 하시라던 검진센터의 직원이 정작 자기는 하지 않았다. 40세에 난생 처음 위내시경 검사를 했을 때 헬리코박터로 생긴 심한 위염이 나왔고 제균 치료를 해야 했다. 그 뒤로는 2년마다 잘 받았다. 그러다 덜컥 암에 걸렸고 항암치료 하는 동안은 그 핑계로 안 했다. 이제는 더 미룰 명분도 없어 했는데 얕은 위궤양이 있어 조직검사를 했고 아프거나 쓰린 증상 같은 건 없지만 일단 위염약 처방을 받았다. 며칠 뒤에 나온 조직검사 결과는 헬리코박터로 인한 만성 활동성, 미란성 위염. 다시 제균 치료가 필요했다. 처음처럼 말이다.
과식이나 과음을 해도 평생 속 쓰림 없이 살았다. 나처럼 실제로 위염은 심한데 통증을 못 느끼는 경우를 의학적으로는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뎌졌다고 한단다. 반면에 위는 멀쩡한데 스트레스 등으로 쓰리고 아픈 신경성 위장장애(기능성 위장 질환)는 없는 걸 느끼는 통증이다. 비교하면 한쪽은 문제가 있는데 안 아프고 다른 한쪽은 문제가 없는데 아픈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위 통증을 모르고 살았던 내가 바로 그 ‘속 쓰림’을 느꼈다.
그날도 08시 15분, 평소처럼 접수대에 앉아 자판을 눌렀는데 모니터에 서버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보통은 의원 전체 인터넷이 안 될 때 이런다. 나는 하던 대로 내과에 인터넷이 안 된다고 알렸다. 그런데 내과는 잘 된단다. 뭐지? 이상해서 검진센터의 병리실, 방사선실, 내시경실, 초음파실을 다 가봤다. 모두 인터넷이 된다. 그럼 접수대의 문젠데… 해서 접수대 컴퓨터에 연결된 공유기의 전원선과 랜선을 뺐다 끼우고 공유기로 들어오는 랜선도 뺐다 끼우고 별짓을 다해도 안 되었다. 검진 시간은 다가오고 슬슬 검진할 분들이 오시는데 말이다. ‘그럼 다른 컴으로 접수해야 하나? 방사선실 컴은 멀고 조금 더 가까운 병리실 컴은 병리샘이 쓰셔야 하니 초음파실 컴으로?’ 그때다. 갑자기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다. 설사할 때 나타나는 복통하고 달랐다. ‘아, 이게 속이 쓰리다는 거구나’
그 속 쓰림을 느끼며 다시 20여 분을 날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업실에 있는, 지금은 안 쓰는 공유기의 전원선을 가져와서 꽂았다. 주황색 엘이디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까 전원선을 뺐다 끼우면서도 불빛이 없는, 전원이 안 들어가고 있는 걸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와, 멍청하게! 아무튼 연결됐으니 한숨 돌리고 허겁지겁 일을 시작했고 오전 내내 속이 쓰렸다.
그러고 나서 주말 술 약속 때문에 타 놓고 그대로 뒀던 제균 치료제를 먹고 있는 요즘은 심하지는 않지만, 가끔 속이 쓰린 걸 느낀다.
궁금하다. 뭐가 바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