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인상 보다 동병

연말이라 일찍 나와서 검진준비를 마쳤건만 오늘따라 예약하신 분들마저 안 오신다. 기온이 뚝 떨어져서 그런가? 기대와 긴장감이 섞인 침묵의 시간…을 깨고 드디어 오셨다. 낯익은 분이다. 여기서 낯이 익다는 건 둘 중에 하나. 긍정적 아니면 부정적 각인. 하필 이분은 부정적인 느낌이다. 전에 나랑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왜 부정적인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지? 등등 차트와 검진조회 창을 여는 순간에도 쉬지 않고 잔머리를 굴려본다. 진상 수검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딱 필요한 만큼만 응대하고 가능한 빨리 보내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정신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런데 이분의 차트에는 별다른 내용도 없다. 흠, 혹시 모르니 일단 경계에서 방어모드로 바꾸고, 오늘은 일반검진만 하신다기에 그것만 접수하고 소변컵을 드리면서 그래도 말씀을 더 드렸다.

 

여기는 예약이 (12월 말까지) 꽉 차서 안 되는데 올해 위암검진, 분변잠혈검사도 해당되시거든요. 그래서 위내시경을 하시려면…

-아, 그거. 실은 내가 작년 말에 여기서 초음파를 했는데, 그때 원장님이 췌장 쪽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진료의뢰서를 써주셔서, 그래 그거 가지고 (큰 병원)가서 검사해서 암이 나와 가지고, 허허. 지금 잘 치료받고 있어요. 거기서 계속 엠알아이, 씨티 찍고 그러고 또 얼마 전에는 내시경이고 뭐고 다하기도 해서…

이 대목에서 울컥! 내가 항암을 한 뒤로는 암 투병 얘기만 들으면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된다.

 

아아! 저도 지난해에 암이어서…

-어디?

저는 여기가. 그래도 이제 저는 항암은 끝내고 지금은 그냥 3개월마다 경과를 보고 있어요. 근데 건강해 보이시는데 지금도 계속 치료 중이신 거예요? 수술은…?

-위치가 애매해서, 허허, 수술은 안 되고. 그 뭐야 방사선 치료는 끝났고 요즘엔 항암치료만 가서 받아요. 주기적으로 한 번씩.

메스껍거나 뭐 다른 부작용은 없으세요? 음식도 잘 드시고?

-예, 별다른 건 없어요. 마지막으로 검사했을 때 크기도 줄었다고 하고.

와, 정말 다행이네요. 하하.

-예, 하하.

 

검진을 마치고 문진을 위해 내과에 내려가실 차례.

 

그럼, 안녕히 가세요. 치료 잘 받으시고 꼭 회복하시구요, 헤헤.

-예, 고마워요. 잘 계시고. 하하

 

역시나 인상이나 느낌만으로 판단해서는 아니 되겠다. 오늘도 바쁘겠지만 기분 좋은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