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오작동

수검자로 북적이는 시간, 검진 순서지에 적힌 다음 차례는 이제 박영래(가명)님. 흔한 이름이 아니어서 호명하고 접수하기 전에 먼저 차트를 열어보았다. 역시 한 분뿐이다. 주저 없이 검진 조회를 한다. 이미 수검 완료. 다른 곳에서 올 3월에 이미 검진을 다 하셨다. 앗싸~! 일이 줄었다. 접수할 필요 없이 상황 설명만 드리고 가시면 되니까 말이다.

 

박영래님?

-네에.

박영래님은 검진을 이미 다 하셨네요. 3월에.

-안 했는데요.

00 의원에서 하셨다고 나오는데?

-안 했어요. 거기 가본 적이 없는데.

혹시 회사에서 단체로 검진하신 건 아닌가요?

-아니요. 안 했는데…

 

어라? 뭔가 이상하다. 생년월일을 확인해 보니… 허걱, 다른 분이다. ‘박영래’가 아니라 ‘박영대’님이다. 다시 순서지를 보니 ‘래’가 아니라 ‘대’자! 조금만 우기면 ‘래’자라고도 할 수도 있는 그런 ‘대’자이기는 하지만. 순간 모골이 송연, 식은땀이 주르륵 정도는 아니어도 어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충분했다. 만약 그 ‘박영래’님이 검진을 하지 않으셔서 검진 조회 창에 빈칸이 보였다면? 엉뚱한 분을 접수하고 엉뚱한 분에게 검진결과를 보내고 엉뚱한 검진을 청구하고… 으악,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붐비는 연말을 피하시고 3월에 일찌감치 검진을 마치신 그 ‘박영래’님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며 늘 건강, 건승하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오작동. 주로 기계나 전자 제품, 무슨 장치 같은 것에 쓰는 말일 텐데 인간인 나도 가끔 잘못 작동하는 것 같다. 자주는 아니어도 깜빡깜빡 한지는 이미 꽤 되어서 그러려니 한다.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생긴, 그러니까 오래 써먹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삐걱거림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항암 이후 이른바 리셋 과정에서 뭔가 잘못 조합되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연말인데,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글을 읽어보시는 모든 분과 더불어 큰일 없이, 한 해를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갈수록 추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