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67화 마술사의 선물
10월이다. 제법 쌀쌀한 바람도 분다. 이제 앞으로 계속, 매일 수검자가 늘어날 것이다. 연말이 되기 전에 미리미리 검진을 받으시기 바란다. 특히 위암검진, 내시경검사는 대부분 예약이 필요하므로 검진하실 곳에 먼저 전화로 문의해보시는 게 좋겠다.
직장동료 두 분이 함께 오셨다. 위내시경도 예약해서 차례대로 검진을 받으셨다. 한 분은 정기 검진 때마다 하셨던 분이다. 당연히 위내시경검사도 여러 번 하셨다. 다른 분은 이번이 첫 검진으로 내시경 역시 처음이었다. 처음 하는 분들이 대체로 그렇듯 내시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공포와 앞서 경험한 분들의 다음과 같은 대사 때문이리라.
-이따만 한 게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데 아휴 아주 죽겠더라고!
사실 내시경의 시작을 보면 그럴 만하다. 내시경의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은 마술사 덕이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마술사가 무대 위에서 긴 칼을 휘두른다. 억지로 구부려 보기도 하고 딱딱한 물건에 텅텅 소리 나게 두드리기도 해서 칼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따다다다다다다… 점점 빨라지는 북소리가 가슴을 조여오고, 드디어 마술사가 그 기다랗고 서슬 퍼런 칼을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놀랍게도 칼이 거의 다 들어간다. 와, 짝짝짝짝!
바로 그때, 이걸 지켜보던 한 의사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생각이 스친다. ‘우와, 저런 식으로 관을 넣으면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겠는데!’ 처음에 내시경은 구부러지지 않는 딱딱한 관이었다고 한다. 받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는 안 봐도 상상이 되겠다. 그리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대장내시경, 코로 집어넣는 가느다란 경비내시경, 이제는 삼키는 캡슐까지.
아무튼, 경험이 많았던 한 분은 여유 있게 내시경을 받았는데 별 이상이 없었던 예전과 달리 이번엔 급성 위궤양 등으로 한 아름의 약을 타 가셔야 했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꼭 검진하기로 다짐한 남다른 이유도 있었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위암에 걸린 것이다. 친구에 대한 걱정과 함께 나는 어떨까 하는 불안감이 함께 찾아왔다. ‘혹시나’가 ‘역시나’였을까? 위 조직 검사를 해야 했고 일주일 뒤에 나온 결과는, 위암이었다. 나중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큰 병원에서 행한 정밀 검사 결과 크기가 작고 전이가 없어서 수술도 깔끔하게 잘하셨단다. 천만다행이다.
굳이 돌이켜보면 이게 다 그 마술사 덕, 하필 그 앞의 의사 덕, 과학과 의학 기술의 발전 덕, 그리고 그 친구 덕분이 아닐까 싶다. 찬 바람이 솔솔 부는 가을, 친구분의 쾌유를 함께 기원하며 그렇게 오늘 하루도 검진센터에 몸을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