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91화 흉터, 비활동성 폐결핵
혈압측정 결과 179/101 mmHg, 맥박수가 112 BPM이다.
혹시 혈압약 드시나요?
-아니요. 안 먹어요.
전에도 혈압이 높으셨…
-아니, 멀쩡했어요. 지금 너무 긴장이 되가지고…
마지막으로 재신 게 언젠데요?
-작년 가을인가, 00대 병원에서 검진했을 때…
그때는 얼마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안 높았어요.
잠은 푹 주무셨나요? 혹시 감기몸살은?
-없어요. 괜찮아요. 어휴 근데 어쩐대. 심장이 가라앉질 않고…
그러게 너무 긴장하신 것 같은데. 지금 심장이(맥박수를 가리키며) 엄청 쿵쾅쿵쾅 뛰시나 봐요.
-안 그랬는데 지금도 너무…, 막….
제가 다시 재 드릴 테니까 일단 긴장 좀 푸시고요.
허리둘레, 가슴둘레, 시력을 재고 이번에는 수동혈압계 옆의 의자로 안내했다. 여전히 높다. 물을 떠다 드렸다. 시간을 두고 두 번을 더 재 봐도 소용없다.
-아이고~. 내가… 폐가 한쪽이…그래서 내가 병원만 가면 심장이 막 뛰고…
비활동성 폐결핵.
결핵이 완치되었을 때는 물론이고 공기 중의 결핵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들어왔다가 자신도 모르게 치료되었을 때도 그 흔적, 즉 흉터가 남는다. 그래서 흉부 엑스레이를 찍으면 그 흔적이 드러난다. 내 얼굴에 난 흉터, 내 얼굴 사진 찍으면 내 얼굴 나오듯이 나오는 것이다. 보기엔 거슬리지만, 그 흉터가 병을 일으키거나 전염시키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비활동성 폐결핵’이 트라우마가 된 분이 적지 않다. 아마도 주변에서 잘 모르면서 경계한 탓이 큰 것 같다. 본인도 당당하게 전염성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잰 결과는 134/86 mmH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