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별거 아닌데 꼭 필요한

검진센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소한 물건이 몇 가지 있다. 주사기 같이 주로 병의원에서만 쓰는, 그런 것 말고 어디에나 있기는 다 있고 누구나 쓰기도 다 쓰지만, 그렇다고 꼭 그렇게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 그저 그건 거 말이다.

 

먼저 클립.

여기처럼 클립을 유용하게 쓰는 곳은 못 본 것 같다. 검진센터의 일이 익숙해질 무렵부터, 아니 내가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일관되게, 엄청 많이, 자주 사용한다. 용도는 검진기록지 뭉치를 임시 고정하는 것이다. ‘엘티이’를 넘어 ‘빠이브지’시대로 가는데 아직도 웬 ‘종이’냐고 하시겠지만, 검진센터에서는 여전히 종이가 먼저다. 일단 원본을 5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 혈액검사 결과, 엑스레이 판독 결과, 자궁경부암과 분변잠혈 검사의 결과지까지 나올 때마다 첨부해야 하는데 클립 사이로 끼워 넣으면 그만이다. 최종 판독, 판정이 끝나고 컴퓨터에 입력하고 뽑아 발송하고 나서 스테이플러로 고정할 때까지 쭉 사용한다.

두 번째, 우표.

지금 이글을 보시는 독자께서는 마지막으로 ‘우표’를 이용해보신 게 언제인가? 나는 어제도 우표를 붙였다. 왜 ‘요금 별납’을 이용하지 않고? 결과 통보서는 적게는 한 장, 많으면 아홉, 열 장까지 차이가 난다. 가령 자궁암 검진만 하셨다면 당연히 한 장의 결과지면 된다. 그런데 일반검진과 모든 암 검진을 다하고 생활습관, 비만 처방이 들어가고 거기에 인지장애, 우울증이 의심되어 그 해설까지 첨부되면 무려 10장이 넘는다. 이런 것을 매번 우체국에 가서 일일이 무게를 재고 따로 결제하면 그게 더 번거롭다. 그래서 3장까지는 380원, 4장부터는 400원에 맞추어 우표를 붙여 발송하는 게 편하다. 참고로 9장부터는 50g이 훌쩍 넘어가서 결과 통보서 한 통의 일반우편 발송비가, 즉 우표를 590원어치 붙여야… 한다는…. 어라?! 이 대목에 잠깐! 우표를 사고 나눠서 또 붙이는 시간을 생각하면? ‘번거롭게’ 우체국에 가는 게 덜 번거롭겠는데. 이런!

세 번째, 수정테이프, 일명 화이트!

수기가 필요한 문서를 다루는 일은 자기가 쓴 것도 못 알아볼 정도로 글씨가 엉망인 나로서는 솔직히 끔찍한 일이다. 그런 내가 접수할 때마다 이름과 차트 번호, 날짜,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직장과 지역가입자 구분, 통보처, 본인부담금 여부 등을 써넣어야 한다. 당연히 오자가 나오고 그럼 수정테이프. 혈액 검사 결과를 옮겨 적다가 틀리면 수정테이프, 불러주신 주소를 바꾸고 싶다고 하시면 수정테이프, 내 마음의 상처도 지워버리고 싶다면 수정테이프…같은 구닥다리 말장난은 집어치우고 아무튼 많이 쓴다.

단순하고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다. 비싸거나  귀한 건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검진센터의 나는 매일 써야 하는 것이고 심지어 없으면 불안하기도 하다. 요즘에는 정치, 경제, 사회 같은 큰일에는 무덤덤하고 오히려 소소한 일에 예민해졌다. 갱년기 때문인지 항암의 후유증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제는 우표 때문에, 오늘은 뜯은 지 얼마 안 된 수정테이프가 망가지는 바람에 짜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