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46화 한 번씩 까줘야
-옻닭,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드셔보쇼. 내가 옻이라면 이제 전문가가 다됐거든. 이게 말이오. 자주 먹을 거까지는 없고 그냥 생각날 때 한 번씩만 먹어주면 좋지. 옻이 좋은 거는 알지요?
글쎄요. 저는 잘…
-에~이, 그 옻칠. 상에 바르면 썩지를 않잖아. 사람들이 괜히 무서워서 그러는 건데 잘 하는 데서 먹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처음 먹으면 가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지나면 다 괜찮아.
…
-내가 20년을 먹었잖소. 이젠 옻나무만 딱 봐도 알거든.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이게 말이요. 들어봐요.
…
-위벽을 까준다고.
…?
-위에 안 좋은 것들이 쌓이지 않소. 그걸 한 번씩 까줘야 한다니까. 옻으로 위벽을 깎는 거지.
…
-아, 병원에서 일하시니 잘 아시잖아, 맨날 사람들 위염으로 고생하는 거. 나쁜 게 계속 쌓이니까. 그걸 한 번씩 깎아줘야 하는 거거든.
…
-나는 봄가을로 까준다고. 너무 자주 하면 안 좋아. 이게 독이잖아, 독. 일 년에 두어 번이면 된다고. 잘 까주는 게 중요하지. 아무 옻나무나 쓰는 게 아니고. 적어도 6년 이상 된 거루다가…
대체 뭘 자꾸 까라고 그러시는지 아무튼 그렇게 깎기와 까기의 경계에서 한동안 옻나무에 대한 말씀, 위벽을 깎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어야했다, 내시경 검사를 하러 가시기 전까지 말이다. 그리고 잠시 뒤에 위 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나오셨다. 내가 무엇이 궁금할지는 뻔하다. 출력된 위내시경 결과기록지를 펴보았다.
…생략
관찰소견
주요병력 및 특이사항: 없음
사용약제: 진경제(+) 진정제(-) 생검(-) 합병증(-)
위내시경 소견: 식도-역류성식도염 소견
위- 미란성 위염 소견
십이지장-특이소견 없음
판독: 역류성식도염 LA class A 및 미란성 위염 전정부
권고사항: 투약권고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