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철없는 남편?

올해 80세이신 000 님의 넥타이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풀 수만 있다면 풀어드리고 싶었고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다가 다음과 같은 대사가 튀어나와 버렸다.

 

넥타이를 매고 오셨네요? (검진하러 오시면서 편하게 입고 오시지 왜?)

-(눈웃음) 씨익!

-농사 질 할 때도 넥타이를 매는 이여. 이 인간이! 겉멋만 들어가지고…

-아이, 뭘 그런 소릴 하고 그랴… (들릴까 말까 작은 목소리)

요즘 일없으시면서… 집에서는 편하게 입고 계실 거잖아요?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와. 하루 죙일 돌아댕기다가…

코로나 땜에 안 돌아 다니신다면서…?

-이거이거 하다가 온다니까. (화투 섞는 시늉)

-지금 물 마시면 안 되지?

지금은 드시…

-검진하는데 왜 물을 마셔!

그렇게 잔소리랄까 핀잔이랄까 화풀이랄까? 딱 꼬집어 하나가 아닌, 그런 감정이 모두 섞여 있는 대사를 검진 내내 치셨다. 그걸 그냥 슬슬 피하며 웃어넘기시는 000 님이나 병리실이면 병리실, 엑스레이실이면 엑스레이실 앞까지 계속 쫓아다니시면서 ‘잘 좀 해!’, ‘똑바로 해!’ 거의 추임새처럼 넣으시는 부인이나 두 분 다 참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시경 검사가 끝나고 나오셨을 때,

 

이제 물드셔도 되요. (000 님은 소파에 앉으시고 부인은 가방에서 뭘 꺼내시려는데 잘 안 나오는 듯)

아니, 그냥 저기(정수기) 물드시면 되는데…

 

엥? 종이팩 오렌지 주스에 빨대까지 꽂아주시는 게 아닌가?

 

에이 다해주시네~. (어차피 다해주실 거면서 왜 그렇게 면박을?)

-근데 빠마 머리는? 짧게 자르니까 딴 사람 같애.

 

급화제를 바꾸시고는 내가 답할 마땅한 대사를 찾기도 전에 부랴부랴 가셨다. 아 참, 저는 빠마가 아니고 반곱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