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파도

내가 검진센터에서 일하면서 기대하는 이상적인 상황은?

-수검자가 한 번에 한 분씩 오신다.

-예약하신 분은 제시간에 오시고 제시간에 마친다.

-검진 장비가 말썽 없이 잘 돌아간다.

-청구할 때 오류가 없다.

자잘한 것들까지 집어넣으면 훨씬 더 많겠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매우 안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답은 정해져 있다. 일 년 중에 이런 날이 별로 없는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 40분 정도는 뭔 일이 났나 싶을 정도도 적막이 흘렀다. 경험상 시작이 이러면 뭔 일이 나게 되어 있다는 불길한 예감. 그 예감이 한 번쯤은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 그런 얄팍한 생각으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수검자가 한꺼번에 오셨다. 예약하신 분들도 하필 빠듯하게 오신다. 예약하실 때는 말씀하지 않았던 검사를 추가로 원하신다. 그만큼 검진 시간이 길어진다. 그 사이를 외래 검사가 파고든다. 드디어 조건이 갖추어졌다. 이제 밀리기 시작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쌓인다. 대기실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 어김없이 터진다.

-아니 내 검사는 언제 해요?

어찌어찌해서 조금씩 밀리다 보니…

-그럴 꺼면 뭐 하러 예약을 잡아요?

죄송합니다. 정 시간이 안 되시면 다시 잡아…

-어떻게 낸 시간인데 또 오라고?

죄송합니다. 최대한 서두르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언제 되는데요?

그제도 어제도 그랬다. 몰릴 때 몰리고 없을 때는 없는 공식.

 

하지만 압력밥솥에서 스팀이 빠지듯이 틈은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버틸 수 있다. 요즘에는 지역 지사, 보건소의 홍보나 수검자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연말에 몰리던 수검자가 조금은 더 분산되는 것 같다. 오늘 검진 장비는 말썽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열흘에 한 번꼴로 하니까 오늘은 청구를 안 해도 된다.

 

고요, 물결, 파도, 큰 파도, 더 큰 파도… 해일. 그리고 다시 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