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01화 상대적 청력?
-저기 오늘 청력 검사도 하지요?
네?
-아니, 이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가지고 귀가 먹었나 안 먹었나 좀 보고 싶어서요.
-아, 이 사람 참. 다 들린다고.
-근데 왜 말귀를 못 알아 먹냐고?
-안 들리는 척하는 거지.
-왜 안 들리는 척하는데?
-듣기 싫으니까 그렇지.
-듣기가 싫어서 들리는데 안 들리는 척한다고?
-그래, 다 들려, 들린다고. 멀쩡하다니까.
-일단 함 검사해보자고.
-그래 해봐. 거 검진할 때 청력검사도 있죠?
네.
그렇게 접수를 하고 소변을 받아오시고 나서도 계속 옥신각신하신다. 키 몸무게를 재고 청력 검사 차례. 보통은 세 번 정도 테스트를 하는데 가뜩이나 요즘 <검진실 블루스>의 소재가 바닥나서 고민이었던 나는 신이 나서 네 번, 다섯 번 신중하게 소리를 줄여나갔다. 게다가 000 님이 기대 이상으로 청력이 좋으셔서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었고. 000 님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로 맞추고 난 뒤 이제는 자리를 바꿔 보호자에게 헤드폰을 씌워 드렸다.
보셨죠? 여기까지 들으셨던 거. 고대로 들려드릴게요.
자, 지금. 어느 쪽이 들리세요? 지금은?
-안 들리는데.
-이걸 들었다고?
-그래, 나 귀 안 먹었다니까.

000 님이 흉부엑스레이를 찍으러 가신 사이 보호자께서 물어보신다.
-근데 왜 집에서는 못 듣는 걸까요? 진짜로 안 들리는 척하는 건가…
글쎄요. 그쪽은 제가 잘 몰라서… 그게 그냥 상대적으로다가 안 들리시는 게 아닐까요?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럴 수 있겠네. 허허.
※일반건강검진의 청력 검사 '정상' 판정 기준은 40㏈이다. 즉, 40㏈보다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면 ‘난청 질환 의심’이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린이, 청소년은 들을 수 있는 소리를 40대만 지나도 못 듣는 경우도 흔하다. 일반검진의 청력 검사는 기본적이고 단순한 검사이므로 이상의 원인을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처음으로 난청 의심 판정을 받거나 정상 판정이더라도 뭔가 불편하시다면 이비인후과를 이용하시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음의 크기←누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