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4화 음주 항목 작성하기
부제: 가끔 술 마시는데 절주하라는 소리 안 듣는 법
오늘은 좀 간단한 걸 살펴보려는데 간단해도 실수를 많이 하시는 부분이다. 일반건강검진의 뒷면 문진표에 있는 음주 항목이다. 흡연 항목도 전자담배에 궐련형, 액상형까지 등장하는 바람에 복잡해졌지만, 안 피우시는 분이 많아서 어렵지 않게 넘어간다. 그런데 음주는 자주는 아니어도 일 년에 몇 번 가족 모임이나 행사 때문에 드시는 분들도 적지 않아서 문제다. 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한 여성분이 일 년에 3번 (회사 회식 때) 소주 1병이라고 적으셨는데 ‘절주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결과지를 받아 보시고 항의를 심하게 하셨다. 일 년에 3번 마시는 사람한테 절주하라고? 그분 입장에서 충분히 화나실 만하다. 근데 이게 결과지를 보내드리는 우리도 좀 억울한 게 공단에서 정한 음주 기준이 여성은 1회에 소주 4잔 또는 맥주 1,500cc 이상이면 ‘폭음’이라서 자동으로 절주 판정이 나가기 때문이다. 참고로 남성은 소주 8잔 이상이다.
그래서 오해가 없도록 ‘아주 가끔’ 드시는 분이라면 ‘➂1년에 ( )번’보다 차라리 ‘➃술을 마시지 않는다.’에 체크하시는 게 낫겠다. 물론 음주가 흡연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정도로 건강에 나쁘기로는 막상막하니까 정확하게 작성하시는 게 원칙이지만.
연말이다. 맨날 다사다난한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며 오늘은 아주 가끔 술 마시는데 또는 거의 안 마시는데 절주, 금주하라는 소리 안 듣는 방법을 알려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