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08화 실내화 외전
-검진센터의 실내화에 대한 얘기는 이미 한 적이 있다. (※참고←누르시오) 오늘은 그 외전, 약간 다른 얘기.
예약하신 000 님이 오셨다. 지난달에 유방, 자궁암 검진을 하셨다. 오늘은 남은 검진, 일반 검진과 위암 검진, 그러니까 위내시경 검사도 하실 거다. 신체 계측에 앞서 먼저 실내화로 갈아 신으시라고 안내한다. 그런데 이 실내화를 권할 때 언제부턴가 아주 짧기는 하지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하나, ‘수검자의 발에 잘 맞을까?’ 하는 것이었다.
검진센터의 수검자용 실내화는 모두 7켤레. 240mm 3켤레, 260mm 3켤레. 바로 이 대목에서 의문을 품는 독자가 계실 것이다. 260mm? 발이 큰 사람도 있을 텐데 좀 작은 것만 있는 거 아니야? 맞다, 그래서 270mm 한 켤레가 더 있다. 발의 크기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아시다시피 여성이라고 무조건 작지도, 남성이라고 꼭 큰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여성용, 남성용을 따로 준비한답시고 3켤레씩 갖다 놓은 건데 솔직히 요즘엔 구별의 의미가 없다.
그나저나 무슨 고민? 신발장 앞에 가면 내가 먼저 수검자에게 맞을 만한 실내화를 꺼내드리는 버릇이 있다. 그냥 다른 샘들처럼 ‘갈아 신으세요’ 하면 알아서들 알맞게 신으실 텐데 괜히 내가 실내화를 꺼내서 ‘이거로 갈아 신으세요. 신발은 거기다 두시구요’ 하는 바람에 이 고민이 시작된 거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내가 권했을 때 거의 90%는 만족하신다. 8~9%는 안 맞아도 그러려니 하고 그냥 신으신다. 1%는 바꿔 신으신다. 내 고민은 바로 이 8~9%의 수검자다. 크기가 작아도 그러려니 하시고 그냥 신고 있는 수검자의 약간 삐져나와 있는 그 뒤꿈치가 주는 불안함, 반대로 너무 커서 거의 매달려 있다시피 덜렁거리는 헐렁함. 혹여 맞지 않는 실내화를 신고 있다가 특히 수면 내시경이 끝나고 약간 어지러울 때나 노인신체 기능검사를 하다가 중심을 잃으실 때 등등 암튼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 다치시기라도 한다면?
실내화를 먼저 꺼내는 버릇은 안 고쳐지고. 그래서 요즘에는 가끔, 안 맞으면 바꿔 신으시라고 덧붙인다. 그런데 오늘 같은 일이 생길 줄을 몰랐다.
피검사를 하러 가시면서도, 지금 병리실에서 피를 뽑는 중에도 계속 그러신다. 불안하다. 나는 얼른 240mm, 260mm 실내화를 하나씩 꺼내 들고 병리실로 갔다.
-첨엔 편해서 좋다 했는데 이게 꼭 침대 위에 서 있는 거 같이… (중심을 못 잡겠고) 너무 푹신해서 어질어질해.
그럼 이게(비교적 딱딱한 260mm) 좀 나으려나?
-잉. 이게 좀 났네.
에휴~
정말로 사람마다 다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