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62화 너무 괜찮으신데
000 님이 오셨다. 38년생이시다. 접수하고 나서 손녀분(?)은 먼저 가셨다. 보호자로 오신 것 같은데 검진을 시작하기도 전에 가셔서 조금 의아했다. 아무튼 오늘은 일반검진과 분변잠혈검사(대장암)만 하신다. 다른 검진은 앞으로도 안 하실 것 같다.
만66세, 70세, 80세의 일반검진에는 노인신체기능검사가 있다. 지난해까지는 66세에만 있던 검사다. 검사는 하지기능과 평행성, 두 가지. 하지기능은 앉은 상태에서 시작하여 일어나서 3미터를 걷고 다시 돌아와 앉는 시간을 잰다. 평행성은 한 발로 서 있는 시간을 재는데 눈을 감은 상태 또는 눈 뜬 상태에서 한다. 하지만 모두 눈 뜬 상태로 한다. 눈 감고 한 번 해보시라. 젊은 사람도 힘들다. 하다 다치시면 어쩌려고! 여기에 노인신체기능 평가 관련 문진이 덧붙고 전에도 소개했던 인지기능(치매) 문진도 있다.
보호자가 따라서 오실 정도로 걷는데 불편해하셨는데 그래도 하지기능은 9초, 한 발 들고 서 있기(평행성)는 많이 힘들어 하셔서 네 번을 반복하고서야 4초가 나왔다. 인지기능 문진에서는 12점이 나왔다. 5점 이하가 특이소견 없음, 6~30점(최고점수 30점)이면 추가 진찰과 상담 필요. 그런데,
-몇 월 며칠? 잘 모르지.
-놔둔 거? 못 찾아.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지.
-약속하고 잊어버려.
-(물건 가지러 갔다가 잊어버리고 그냥 오는 거) 많아.
-사람 이름? 생각이 안 나.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어.
-(계산 능력은) 많이 떨어졌지.
-(예전에 비해 성격) 많이 변했어. 까칠해졌다고 하나?
대부분 항목에서 점수를 얻으셨다. 말씀을 들어보니 이미 처방을 받고 계셨다.
-치매약이 나는 맞지 않더라고. 그래서 붙이고 있어, 패치를!
인지기능 문진을 하면서 이렇게 점수가 높게 나온 분은 내 기억에 별로 없다. 진짜 치매가 있으면 검진을 잘 안 하시기도 하거니와 또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가 보일까 싶어 오히려 아니라고 하시는 분은 있어도 말이다. 골다공증약을 드시는데 최근에는 발목까지 삐어서 걷는 게 힘드신 건 잘 알겠지만, 오히려 치매는 모르겠다. 자신의 상태를 너무 잘 알고 계시다.
보호자가 먼저 가신 이유를 알겠다.
※참고
하지지능(3미터 걷고 돌아와 앉기): 정상:10초 이내, 경계:11초~19초, 질환의심:20초 이상
평행성(한 발 들고 서 있기, 눈 뜬 상태): 정상: 20초 이상, 경계:10~19초, 질환의심:9초 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