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25화 특이
한해를 마감하는 검진 기한이 다가오면서 검진센터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다. 그 파도가 크고 거셀수록 평소에는 보기 힘들었던 풍광도 펼쳐진다. 예를 들면…
사례 1.
(전화 통화 중)
-아까 소변을 못 받고 갔던…
아, 000 님이요. (접수대 위에 그분의 소변컵이 빈 채로 있다) 네에?
-소변을 꼭 받아야 해요?
일반검진은 하나로 묶여 있는 검사라서… 그래도 정 사정이 안 돼서 못 받으시면 할 수 없지요. 그 검사만 빼지요, 뭐. (성적 발생으로 청구에서 제외하거나 나중에라도 받아서 검사하면 추가 청구함)
-그럼 그냥 (오늘 한 거) 다 취소할까요?
네? 검진한 거를요?
두 시간 전에 일반검진, 위암 검진을 하신 분이다. 글쎄, 빠진 항목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 결국 점심시간 뒤에 오셔서 소변을 받기로 하셨지만, 이유는 알 수 없다. (나흘 뒤에 오셔서 소변 받으심)
사례 2.
(또 전화 통화 중)
-어제 일반 검진을 했던 000인데요.
네에.
-필요해서 그런데 어제 뽑은 피를 돌려받을 수 있나요?
네? (황당)
-그게 00 병원에 다른 일로 왔는데 거기서 전에 뽑은 피를 가져오라고 하네요.
… …(황당X당황)
-그래서 받았으면 하는데요.
병원에서 피를 가져오라고 한다고요?
-아무튼 그게 필요해요.
그게… 의료법상 의료기관에서 채취한 혈액은 본인이라고 해도 가지고 가실 수 없는데요.
-안 된다구요? 그래요, 그럼 제가 복지부에 문의해볼게요.
드물지만 일어나는 일들이 있고 또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위의 두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 특이하다고 하기에도 특이하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특이한 사람들, 일들을 만날까? 안 만났으면 하는 일은 안 만났으면 좋으련만. 세상이 그렇지는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