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깜빡의 흔적3-최종편

멀쩡한 정신으로도 깜빡하기 일쑤인데 수면내시경을 하게 되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000 님은 수면내시경 검사를 끝내고 정신을 차린 뒤 탈의한 옷과 가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옷하고 가방이 다 없어졌어요? 어떡해요, 이거!

혹시 사물함에 넣어두지 않으셨어요?

-안 넣었다니까! 넣었으면 열쇠가 있을 것 아니에요, 열쇠가! 열쇠가 없잖아요?

 

검진센터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작은 물건도 아니고 도대체 옷가지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런데 딱 한 군데 의심 가는 곳이 있었다. 8번 사물함. 다른 사물함의 열쇠는 모두 꽂혀있는데 8번만 없다. 다른 수검자가 8번을 이용하고 계신 것도 아니다. 단, 열쇠가 없다. 사물함의 열쇠는 열려있으면 빠지지 않는다. 열쇠가 없다는 말은 누군가 잠근 다음 열쇠를 뺐다는 얘기다. 열쇠는 작으니 잃어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여러 정황상 8번에 옷가지와 짐을 넣고 잠근 뒤 열쇠를 분실했을 확률이 가장 높다. 다만 열쇠를 가지고 가시는 분이 간혹 있다 보니 하필 여분의 열쇠가 없는 사물함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8번. 000 님은 뭐 이런 데가 다 있냐며 계속 짜증을 쏟아내고 계셨고…

잠긴 것을 잘 열기로 소문난, 내과의 윤희 샘이 나섰다. 클립을 이용해서 사물함 열기에 도전, 십여 분이 넘는 사투 끝에 드디어 8번이 열렸다.

전에도 소개했던 ‘프로포폴’이 깊고 짧게 작용하여 금방 깬다고는 해도 수면내시경을 한 날에는 장시간 운전 같은 일은 안 하시는 것이 좋겠다. 게다가 얕지만 길게 수면을 유도하는 ‘미다졸람’이 사용되는 대장내시경까지 하셨다면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더욱더 피하셔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검진 핑계 대고 푹 쉬시는 게 제일이겠다. 졸리기도 하거니와 그날 대장내시경을 했다는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 다른 구체적인 일, 시간 등은 아예 생각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대장내시경 검사 전에 수검자에게 미리 말씀드리곤 한다.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나 계약 같은 것은 절대 하지 마세요! 기억이 안 납니다.

 

그리고 보호자께도 따로, 조용히 드리는 말씀이 있다.

 

평소에는 잘 안 해주는, 그런데 꼭 받았으면 하는, 뭔가 그런 필요한 약속 같은 게 있으면 오늘 하세요.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