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3화 ‘검진 대상자가 아닙니다’일 리가 없다
‘검진 대상자가 아닙니다.’ 오늘 오후에 예약하신 000님의 검진 조회 결과다. 납득이 안 된다. 일단 이분은 홀수년도 생이다. 따라서 2023년은 검진 대상이다. 그리고 어느 항목이 제외되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전체가 아니기는 힘들다. 공단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예를 들어 의료보험 자격이 없어졌거나 단순 여행 외국인은 그럴 수 있지만 이분은 심지어 직장 가입자다. 뭔가 꼬여있다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이럴 땐 공단에 문의하는 게 상책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오늘이 수능일이라 오전 10시 이후부터 일반 업무가 시작된단다. 흠.
오전 10시 15분, 연결됐다. 사정을 말씀드리니 담당자도 의아해하신다. 몇 가지를 확인하고 수정했지만 일반 검진은 직장에서 따로 신청하시란다. 어라? 여전히 이상하다. 다시 말하지만 홀수년도 생은 직장, 지역, 피부양자 상관없이 홀수 연도인 올해 무조건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당사자인 000님에게 전화 걸었다. 이러저러해서 공단에 여차저차 했다 말씀드리고 단, 일반 검진은 직장에서 신청하셔야 한다고 전하면서도 그 말에 내가 수긍할 수 없다. 해서 차마 끊지 못하고 말을 돌리고 있었는데…

-1월에 (검진을) 했어요.
네? 검진을 하셨다고요? 어디서요? (대상자도 아니신데) 어떻게…?
-저기 0000에서 한 거 같은데…
0000이면 그 법원 앞에 있는 거 말씀하시나요?
-네, 맞아요. 거기서 (검진을) 한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하셨어요? 그럼 비용(검진이 아니면 비용이 적잖게 드니까)은 얼마나…?
-얼마 안 나왔어요.
검진을 하시면 기록이 남아요, 그런데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참, 이상하네요. 뭔가 바뀌지 않는 이상…
-아참, 주민번호가 바뀌었어요.
예?
-국적이 바뀌어서, 6월에…
(잡았다!) 그럼 바뀌기 전 번호는 어떻게 되시나요? 네, 네네. 알겠습니다. 공단에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공단에 이전 외국인 등록번호를 불러드렸다. 1월에 검진하신 게 맞았다. 아까 수정한 것을 재수정하고 알려줘서 고맙다고까지 하셨다. 그리고 다시 000님께 연락해 검진하신 것을 확인했고 오늘 예약 건은 외래로 하시니 비용이 발생할 거라 말씀드리며 깔끔하게 수사를 종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