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12화 무시 그리고 불신
잠시만요. 올해는 분변 검사만 있으신데…
-그거는 작년에도 했어. 그때 여기서 대장내시경 해보라고 해서…
그러게, 양성이셨네. (차트를 보니 분변잠혈 양성, 00대 병원으로 의뢰. 당시에 예약이 많이 밀려 있어서 그런 것 같음)
-그래서 가서 했는데 뭐 이상은 없었어. 내가 변비가 좀 있거든.
변을 자주 못 보시는 분들은 변 볼 때 힘주다가 상처 나고 그래서 피가 섞이기도 한데요.
-근데 거기서 당약을 먹으라는 거야.
…?
-가면 3개월씩 처방해줘. 당약만! 근데 내가 요즘 낮에는 괜찮은데 밤만 되면 그렇게 기침이 나고 그래. 그래서 검진을 할라고 그러는 거지.
검진이요? 근데 올해는 다른 검진은 없어요. 피검사나 내시경 그런 거는 내년에…
-그냥 하면 안 되는 거요?
검진은 아니구요. 검사하는 거야 원하시면 하면 되는데 그건 먼저 진료를 보셔야 해요. 근데 여기는 피검사 결과 그런 게 없으니까 또 검사할 거고 그럼 또 괜히 돈이 들어갈 건데요.
-아니 돈 드는 건 상관없어.
거기서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셨을 거잖아요? 그럼 알 텐데. 거기선 뭐라 그래요? 말씀 안 해보셨어요?
-했지. 했는데 뭐 당약 부작용이라고 그러는데 근데 그냥 당약만 3개월씩 준다고. 내 얘기는 듣지도 않어. 밤만 되면 계속 기침이 나는데.
그 왜 갯벌에 바위섬처럼 물 들어오면 잠기고 썰물 빠지면 드러나듯이 낮에는 멀쩡하다가 밤만 되면 그러신다? (갑자기 씩 웃으심) 많이 불편하세요?
-아니 뭐…
거기서 다른 처방은 안 받으셨어요?
-당약만 줘. 3개월씩. 말을 안 듣는다니까. 그게 처음에 갈 때부터 그랬어요. 거기는 분위기가 그… 무시하는 거 있잖아. 가면 맨날 기다리라 그러고. 당약만 먹으라 그러고.
아~, 그니까 거기를 못 믿겠으니 여기서 검사를 하시고 싶으시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