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59화 그럼 나도
프로포폴, 요즘에야 별 얘기가 없는데 한동안은 참 많이도 뉴스에 오르내렸던 약의 이름이다. 마이클 잭슨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 하얀 빛깔 때문에 ‘우유 주사’로도 불리며 중독성이 있다, 없다 말이 많은 바로 그 약. 수면위내시경이나 성형시술을 할 때 주로 사용한다는 약. 특유의 순간적인 수면 유도, 푸~욱 잔 느낌, 깰 때의 약간 알딸딸한 기분 등으로 피로 회복 주사로 오용되기도 했고 사건, 사고도 적지 않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엄격하게 관리되는 약이다. 그렇더라도 검진센터에서 수면위내시경을 할 때는 여전히 잘 쓰이고 있다. 이만한 약이 없기 때문이다.
수면대장내시경을 할 때 많이 쓰이는 미다졸람이 얕고 길~게 자도록 하는데 비해 포폴은 깊고 짧게 수면을 유도한다. 해서 검사가 끝나고 5분, 10분 정도면 의식이 돌아온다. 빨리 끝내고 가는 게 좋지 않은가. 다만 수면은 비급여 항목이라서 따로 비용이 든다. 검진센터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이곳에서는 대략 100명 중 50명에서 55명 정도가 일반, 나머지는 수면으로 반이 조금 안 되는 것 같다. 뭐가 더 나은 검사냐고 궁금해하시는데 검사 방법은 똑같고 다만 깬 상태에서 하느냐, 자면서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근데 그 차이가 의외로 크다. 의식이 없으니 고통의 기억도 없고 기억이 없으니 힘들고 뭐고 이런 게 없다. 돈의 힘이랄까?
그전에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보신 분도 있겠지만 만40세부터 위암검진이 나오니까 그때 처음 하게 되는 수검자가 많다. 많이 힘드냐고 물어보시는데 사람이 다 다르듯이 참는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어렵다고 남들도 어려운 게 아니라서 딱 부러지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위내시경검사 시간은 1분 30초에서 2분 정도. 이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참을 만하게 짧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길다. 그런데 무슨 검사든 첫 검사가 힘들면 나중에 그 검사가 꼭 필요할 때 피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되도록 첫 검사는 편하게 경험하는 게 낫다는데 적절한 얘기 같다. 둘 다 경험을 해봤다면 고민도 생긴다. 편하긴 한데 돈이 들고 일반으로 하자니 힘들고…
편하시죠? 그래서 수면으로 하시지요.
일반으로 해보시고 도저히 못 하겠다 싶으시면 다음엔 수면으로 하세요.
잘하셨네요, 참을 만하시죠? 그 돈으로 저녁에 맛있는 거 드세요.
이런 대사로 그때그때 넘기기는 하는데 그래도 무엇으로 할지 모르시겠다면 다음과 같은 경우가 가끔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