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봄이다

봄이다. 세상에나! 정말 봄이 왔다. 성인이 되고서는 한 번도 입지 않았던 내복을 지난겨울에는 입었다. 양말도 두 겹으로 신었다. 그만큼 추웠다. 아무리 겨울이지만 이렇게까지 추울 수 있을까 싶었고 이 겨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끝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나? 그런데 그런 겨울이 가고 마침내 봄이 오다니. 아침 출근길이 춥지 않다니, 낮에는 15도가 넘다니, 따뜻한 바람이 불다니… 세상에. 경이로웠다. 계절이 바뀌는 게 경이롭기까지 하다니.

 

검진센터의 접수대 위에는 화분이 하나 있다. 화분 옆에는 ‘12. 5. 15 000 님 기증’이라고 검은색 유성 사인펜으로 쓰여 있다. 내 글씨다. 그날 000 님이 검진을 마치고 가신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화분을 들고 다시 오셨다.

 

-검진 잘 받았어요.

네~. 괜찮으시죠?

-괜찮지요. 이거…

이게…?

-그냥 가는 길에 이뻐서 샀어요. 여기 두라고.

네? (이걸 왜)

-그냥 여기 둬요. 그럼 이만.

네? 아, 이거는… 고,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결국 받기는 했지만 거절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얼른 받기도 뭐한 애매한 순간이었다. 재작년에 한 번 분갈이하고는 별로 신경 쓴 게 없는데도 그 때 받은 제라늄 화분이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제라늄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 도톰한 잎사귀를 문지르면 특유의 진한 향이 난다. 강한 화장품 냄새 같기도 하고 아무튼 독특한 향이다. 처음 받을 때는 이름도 몰랐다. 갑자기 화분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이렇다. 올 1월인가 한창 추울 때 그러니까 아까 말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겨울 어느 날, 문득 화분을 바라보다가 000 님은 어째서 그 뒤로 한 번도 안 오시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해서 무심코 000 님의 진료 기록을 열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대부분 기록에는 없으므로 무관심했던 항목인데 내 진료 기록에도 생기고 나서부터 눈에 잘 띄는 ‘추가정보 중증 암/화상 등록대상자(본인부담5%)’이다. 숨을 한번 쉬고 자세히 보기를 눌렀다.

 

-구분 암1, 등록일 2013-05-30, 종료일 2018-05-29, 특정기호, 등록번호, 상병코드…

-구분 암1, 등록일 2017-06-21, 종료일 2022-06-20, 특정기호, 등록번호, 상병코드…

 

아래 17년도 것은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맞다, 내 기록이다. 작년에 항암치료를 하고 나서는 암 투병을 하신 분들을 보면 더 이상 남의 일처럼 대할 수가 없었다. 글자 그대로 내가 겪었으니까. 아하, 부디 000 님도 무사히 건강을 회복하시길 내 일처럼 바라본다.

 

…경이로운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