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19화 9월 마감
은근히 바빴던 9월이었다. 아마 118화에서 다루었던 메시지, 그러니까 ‘9월 30일까지’의 여파가 크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좀 과장하면 9월의 검진센터 분위기는 왠지 연말의 냄새가 살짝 났고 그래서인지 10월 1일에는 1월에나 보던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거 내기에는 너무 늦었나요?
-이거 좀 늦게 가져왔는데 괜찮아요?
-사정이 있어서 이거를 이제야 가져왔네. 어쩌지?
여기에서 ‘이거’란 분변통이다. 다른 달에 비해서 확실히 분변잠혈 검사가 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미 분변잠혈 검사를 하신 분이 또 분변을 가져오신 경우가 두 번이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지난 화에 소개했고.
3월에 하셨는데요.
-근데 이건 또 뭐야?
그건 보건소에서 보낸 거예요.
-그럼 확인(수검 여부)하고 보내야지. 막 보내면 어떡해!
저희가 보낸 게 아니라…
-무슨 일 처리를 그따위로 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