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26화 일찍 검진하신 그분에게
지금, 검진센터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다. 평소에는 많이 기다려도 30분 안쪽인데 연말, 특히 한해가 얼마 남지 않은 요 며칠은 한 시간은 기본이다. 매년 요맘때 오시는 분은 검진센터는 늘 분주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그래서 수검하는 분에게 이 분주함은 추석에 고속도로 막히듯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고 그래서 이 연말이 주는 긴장감, 스트레스는 어쩌면 일하는 직원들만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오늘은 황당하게도 방사선실과 병리실의 전기가 네 번이나 나갔다. 어딘가 과부하가 걸리거나 누전이 있는 것 같은데 암튼 덕분에 검사는 더욱 늦어지고 찍은 엑스레이가 날아가 버리고. 으아~!
000 님 검진을 이미 하셨는데?
-저요? 안 했는데요.
여기 0000에서 일반 검진, 구강 검진 다 했다고 나오는데요?
-안 했는데…
000 님 생년월일이 00년 00월 00일 맞죠?
-저는 XX일인데.
아~ 다른 분이구나. 이런… 제가 잘못 봤네요. 이름(흔한 이름도 아니었고)하고 생년, 월까지 같으셔서. 아이고 죄송해요. 그럼 여기는 처음이시네요?

하마터면 다른 사람으로 접수할 뻔했다. 오늘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뒤죽박죽일까? 생각해보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수검자 중 한 분이 티브이 채널을 0으로 바꿔 달라고 하셨을 때! 내가 참 보기 싫어하는 아침 방송 토크쇼, 우울한 뉴스 그리고 늘 요것만이 정답이라는 하는 건강, 음식 정보 방송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거슬렸던, 것이었던, 것이었더랬다. 그분이 가시고 나서 바로 돌린다는 것이 바빠서 틈을 놓쳤고 그만 한참 뒤에나 채널을 바꿀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았을 때, 아까 그 000 님, 다른 분으로 접수할 뻔했던 그 000 님과 같은 이름, 생년, 월의 000 님에게 감사한 맘이 들었다. 그분이 일찍 검진하신 바람에 한 번 더 확인하게 되었고 그래서 실수를 막았으니 말이다.
해서 일찌감치 검진하시는 분들에게만(!) 인사를 드릴…려다가 사실 저마다 다 사정이 있고 연말에 몰리는 걸 몰라서 그러시는 것도 아니니 이미 수검하신 모든 분과 앞으로 검진하실 모든 분에게 올해 마지막 <검진실 블루스>를 빌려 새해 인사를 드린다.
“2020년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잘되시길 바랍니다!”
아 참, 그리고 흉부엑스레이가 날아가서 다시 찍으러 오신 두 분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한 번 더 드리고… 내년에는 행운이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