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노래 가사이자 아주 황당한 상황이나 입장에 처했을 때 흔히 쓰는 말. 2010년이 딱 그랬다. 의학만화를 그리자는 큰 뜻을 품고 춘천에 왔으나 6개월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내가 의료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내린 결론은 병원에서 직접 일을 하는 것, 즉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료 무자격자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걸리면 의료법 위반이다. 다행히 건강검진센터에는 딱 한 가지 일이 있었다. 수면내시경 보조.
위암 검진인 위내시경 검사를 수면내시경으로 할 때 수면상태인 수검자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술 먹고 필름이 끊어진 것과 비슷하다. 취했을 때 자는 사람, 한 소리 또 하는 사람, 우는 사람 등등 별의별 행동을 다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간혹 내시경을 잡아 뺀다든지 심하게 움직여서 검사 자체가 힘들거나 식도에 상처를 입는 일도 생기는데 내가 그걸 막는 것이다. 정맥 주사된 수면제가 수검자의 혈관 속으로 퍼져나갈 쯤 내가 수검자의 두 팔을 잡는다. 그리고 놓지 않으면 된다.
그것 말고는 정말 없었다. 접수? 예약? 안내? 설명? 전화 받기? 뭐가 되어야 할 거 아닌가. 그런데 하루 종일 ‘보조’를 하는 게 아니다보니 내시경하는 시간을 빼면 검진센터 안에서 나는 정말이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였다. 어디에 있어도 어울리지가 않았다. 검진센터의 낙하산 이방인. 방사선사 샘, 병리사 샘(지금도 같이 일하고 계심), 다른 샘들은 저 인간은 뭔데 저러고 있을까, 일을 시키자니 그렇고… 참으로 갑갑했을 것이다. (그때 나의 사수격인 방사선사 문 샘을 생각하면 지금도 짠하다. 병원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잡다한 행정적 업무 등등 부담스러울 텐데도 눈치 안보고 참 혹독하게 가르쳤다. 그게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몇 차례나 ‘검진센터의 12월’을 함께한 문 선생은 꼭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나눈 전우 같다.)
아무튼 지금 그때로 다시 가라면, 안 갈 것 같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더디지만 나아졌다. 검진 접수도 하게 되고 전화도 받고 키, 몸무게, 허리둘레, 시력, 청력, 혈압을 재고, 문서 정리, 입력, 청구 같은 검진센터 일을 알아가면서 주변을 둘러 볼 여유가 조금 생겼다. 그제야 각양각색의 수검자들, 검진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눈에 들어왔고 드디어 뭔가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