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51화 인사, 인사말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오늘 예약하셨네요?
혹시 분변(대변)은 가져오셨나요?
검진하러 오신 분에게 던지는 가장 일상적인 말들. 검진에 따라 금식을 하셨는지, 공복 상태인지 자연스럽게 확인하며 건네는 말들.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수검자의 상태와 이름,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등등 정보를 확인하는 말들. 그리고 수검자가 궁금해서 묻는 말들, 그에 대한 안내. 이런 말들이 오가고 수검자는 필요한 검진을 하고 가신다. 하루만 지나도 어제 내가 그랬었나 싶게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규칙적이고 관성적인 일들이다. 그런데 가끔 나를 기억하시는 분이 오시거나 거꾸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분이 오시면 마치 단골을 맞는 가게 같아진다.
-어이구 살이 많이 빠지셨네에~.
아~ 네, 하하. (여유가 있을 때는 나의 항암 경과에 대해 말씀드리기도 하고…)
-수염도 깎으셨네.
네,네. (내가 수염을 깍은 것이 4년 전이니까… 흠, 그 전에 오셨었나?)
-아이고 깔끔하고 보기 좋아요.
그렇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잠깐이나마 밝은 얼굴을 만들어주신 단골이 가시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다른 기분 좋은 일이 있으셨는지, 늘 이렇게 인사하시는 원래 낙천적인 분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인사말을 남기고 가신 분은 음… 검진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맞다, 맞아. 2년 뒤. 2년 뒤에도 꼭 뵀으면 좋겠다. 하하하하. 내일은 고사하고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이 격변(?)의 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