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93화 정확한 검사 2
-이거는… 정확한 검산가요?
예? 그게 무슨…?
000 님이 오셨다. 일반검진은 처음이라신다. 조회해보니 구강검진은 이미 하셨다. 올해부터 일반검진과 구강검진이 ‘만 20세 이상’으로 범위가 확대되어 직장가입자가 아니라면 일반검진, 구강검진이 처음인 분이 많다.
-그게 그…
정확하다는 게 어떤 의미로 쓰신…?
-(아, 어떻게 설명하지?)…
검사의 오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지금 하는 검진이 제대로 하는 건지, 형식적으로 대충하는 건 아닌지, 그런 게 궁금하신 건가요?
-그게, 제가 얼마 전에 구강검진을 했어요, 입을 아~ 벌리고 뭐도 쓰고. 근데 그땐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러더니 지금은 안 좋아서 치료를 받고 있거든요.
아, 네~. 근데 이 일반검진을 가지고 모든 걸 볼 수는 없어요. 잘 아시겠지만, 그 정확하다는 게 결국 기준이 따라 다르잖아요.
이거로 알아볼 수 있는 거는 모든 병이나 보기 힘든 질환 같은 거는 일단 아니구요. 성인이 가질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만성질환에 대한 검사에요. 예를 들어서… 작년부터 콜레스테롤 검사가 ‘2년마다’에서 ‘4년마다’로 바뀌었어요. 검사가 있을 때가 있고 없을 때가 있는데 이번에 000 님의 검진에는 콜레스테롤(고지혈, 이상지질혈증 등 모두 같은 표현) 검사가 없어요.
그래서 피검사 항목에 들어있는 빈혈이나 당뇨(공복혈당), 간 기능에 대해서 문제가 없으면 결과는 그냥 ‘특이소견 없음’, ‘정상’으로 나올 거예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000 님의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도 그건 검사에서 빠져 있으니까 결과에도 당연히 안 나오는 거죠.
-아~.
네. 여기에 들어있는 피검사, 소변검사, 흉부엑스레이의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얘기지 몸 전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뜻은, 엄밀하게는 아닌 거죠.
마침 다른 수검자도, 접수를 기다리는 분도 없어서 실은 제가 암에 걸렸었는데 그런 암은 이 일반검진만으로는 알아낼 수가 없다고 말씀드리려다 너무 나가는 것 같아서 다시 삼켰다.
근데 결과에 이상이 없어도 어딘가 불편하거나 불안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때 추가 검사를 해서 원인을 찾거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낫겠죠.
-그러네요. 이해가 되네요. 그럼 검진할게요.
공복 여부,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소변컵을 드리고 화장실 위치를 안내하고 받은 소변을 갖다 놓을 하얀 바구니도 알려드렸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접수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