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뒷담화
- 경험상 '스키다시'가 많이 나오는 횟집은 대체로 회가 별로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되는 횟집은 회부터 나옵니다. 작품에 대해 미리 사족을 다는 건 작품이 별로란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 분들의 이해와 소통을 위해 작업과 관련해서 잡다한 얘기들을 스키다시처럼 널어놓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 ‘초음파의 신’에 대해서
- 처음부터 학습만화로 기획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3년 전 원주세브란스 병원 소화기 내과 교수님이신 백순구 선생님(제 의국 선배님이십니다)께서 좀 더 쉽고 재미나게 복부 초음파 검사를 가르치고 증례를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고 제게 문의를 해주셨습니다. ‘먼 나라 이웃나라’ 나 ‘만화항생제’ 정도의 학습만화를 고려해 봤지만 재미와 정보전달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스토리 속에 정보를 녹여내는 의학드라마 형태의 만화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초음파 증례를 토대로 스토리를 만들고 스토리 속의 증례를 따로 전문적인 초음파 강의로 연결하는 구조로 기획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백순구 선생님께서 기꺼이 희생양이 되셔서 극중의 인물로 등장하시게 되었는데 솔직히 만화를 보시고는 당신의 정체성과 사뭇 다른 설정에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실제의 선생님은 극중에 나오는 백순구 교수와는 전혀 다른 자상한 성격의 미남이십니다. ^^ 공통점은 실력밖에 없습니다.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초음파의 신 첫 회가 나갔을 때 많은 댓글들이 흥미롭다, 기대된다 등등 좋은 평가가 많았지만 같은 의사로서 일반인이 봤을 때 오해할까 봐 염려된다는 우려(만화를 다큐로 받아들이신건 아닌지. ^^;;)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종합병원 의료시스템은 일개 레지던트의 의견에 따라 수술이 결정될 만큼 허술하지 않습니다.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의나 마취과의사가 수술 전에 꼼꼼하게 검사결과를 확인하고 조금의 오류가 있어도 수술이 취소됩니다.
처음 초음파를 접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담낭비후소견이 단지 담낭염이 아닌 다른 질환에 의해서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강력하게 각인시키려면 보다 인상적인 스토리가 필요했고 그래서 만화적인 재미와 상상력으로 각색한 부분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 독자는 그냥 스토리를 즐기시고 보다 자세한 초음파정보가 필요하신 분은 만화 중간에 삽입된 작은 초음파 화면을 클릭하시거나 스마트폰 에서 터치하시면 됩니다. 그럼 유투브로 연결된 백순구 교수님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동영상으로 서비스 됩니다.
백순구 교수님의 유투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만화에서 다루지 못한 많은 초음파 증례(약 130여개 정도)를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홈피 작업 중이고 완성되면 따로 공지해드리겠습니다.
*‘만화항생제’에 대해서
- 첫 출간이 2005년이고 10쇄를 찍었습니다. 지금이 2017년이니까 무려 12년전 책이지요. 새로운 정보가 계속 쏟아지는 전문분야에서 찍은 지 10년이 넘는 책이 전문서적일 수 있을까요? 개정판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개업의로서 먹고 사는 게 힘들다보니 새로 그릴수가 없었습니다. ㅠ ㅠ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자 출판사에 절판요청을 내용증명으로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온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는 건 참 불가사의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웹툰으로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했고 필요한 부분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항생제의 역사와 분류 작용기전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그냥 우려먹고 있습니다. 각론 부분에서 새로 개발된 항생제와 항바이러스 제에 대해 새로 그리겠습니다.
진료와 작업을 병행하다보니 만화작업이 참 쉽지 않은 노릇 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응원과 기대덕분에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흡하고 모자란 부분에 대해 지적해주시고 아울러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내과원장 박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