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공룡이 생각나다

이제 나무에도 푸른 잎이 가득하다. 철쭉이 한창이고 수수꽃다리도 곳곳에서 진한 향을 내뿜는다. 횡단보도의 한쪽 끝에서 겨우내 접혀있던 그늘막도 펼쳐졌다. 오락가락하지만 미세먼지도 한 달 전보다는 덜 한 것 같다. 이렇게 변할 것은 변하지만 그중에는 변한다기보다는 그냥 돌고 도는 것에 더 가까운 것도 많아서 뭔가 좀 변했으면 하고 바라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가 있다. 무슨 거창한 담론을 들먹이려는 건 아니다. 그냥 늘 하듯이 수면내시경 보조를 했고 그러다가 간만에 손목이 삐끗해서 소염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그냥 파스나 붙일까 고민하면서 내시경실에서 나와 접수대로 가는 사이 병리실에서 들린 얘기 때문이었다.

 

-아니 뭔 피를 왜 그렇게 많이 뽑아?

(병리샘) 그냥 적당히 뽑는 거예요. 검사할 수 있을 정도만. 제가 피를 많이 뽑아서 뭐 하겠어요?

-뭐하긴 팔아먹지!

(웃음) 어디다 파는데요? 아시면 저 좀 알려주세요?

-적십자에 팔지.

요즘은 안 사요.

-??

매혈을 안 한다고요.

-매혈 안 해?

네.

- … ….

매혈, 정말 오랜만에 이 단어를 들은 바로 그때, 갑자기 꽤 오래전에 봤던, 다 읽지는 못했고, 당연히 줄거리는 물론 주인공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최인훈의 소설 ‘화두’의 서문(?)이 떠올랐다. 인류라는 공룡. 머리는 21세기를 넘보는데 그 커다란 몸통은 20세기에 걸쳐있고, 그리고 꼬리는 아직도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근데 그 검사는 왜 안 해?

어떤 거요?

-왜 그 가슴에다 이렇게 뭐 붙여가지고 하는 거 있잖아. 이렇게, 이렇게.

심전도요?

-응, 그거.

그거 검진에서 빠진 지 꽤 되었는데, 한 10년 넘었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