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5화 검진센터의 소리
보통 병원하면 소독약 냄새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자는 원장님의 소신에 따라 적절한 환기와 방향제를 이용, 내과나 검진 센터에서는 병원 특유의 냄새를 맡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소리가 나를 자극한다.
더군다나 감기약에 취해 접수대에 멍하니 앉아 있자니 여러 가지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저 멀리 내시경실의 내시경 소독기 돌아가는 소리, 내시경 장비의 끊임없는 기계음. 오전 내내 시끄러웠던 기초검사실의 혈압계, 키 체중계, 띠리리 띠리리 전화 벨소리. 같이 일하는 두 선생님의 하얀 샌들의 발자국 소리, 둥딱둥딱 두두두둥따다다딱 기대 이상의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안마 의자 등등… 그리고 사람들의 소리.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수고하세요. 인사 소리
OOO님 이리로 오세요. 피검사하실 거에요. 따끔. 사진(엑스레이) 찍을게요. 선생님들의 안내 소리. 내시경을 받는 수검자의 헛구역질 소리.
그리고 나를 부르는 소리.
“수면이요”, “잡아주세요”
갖가지 소리가 검진센터 안에 있다.
그중에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ㅋㅋㅋ
그 소리는 문 선생님이 차트 내용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소리다. 어찌나 빠르게 입력하시는지 거의 기계음처럼 들린다. 빠르게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바로 그것. 다다다다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다다다......
이 소리는 왠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일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소리. 시원스럽게 넘어가는 소리다. 마치 막힘없이 물이 흘러가는 소리처럼 편안하다.
그리고 검진 결과 이상을 발견하고 치료해서 나았다며 밝게 웃는 수검자의 말씀도 물론 아주 듣기 좋은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