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물러날 때를 알아야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 사정은 이랬다. 한 달 전 검진하러 오셨다가 피검사는 빼먹고 가신 분이 있었다. 뒤늦게 혈액 샘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연락 드렸지만 이미 식사를 하신 뒤였다. 먼저 잘 챙기지 못한 것에 사과 말씀을 드리고는 다음 날 아침 공백으로 다시 오시기로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오시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서울에 가셨고 3일 뒤에 오신단다. 갔다 오시면 꼭 나오시라고 말씀드리고 기다렸건만. 흠… 열흘이 지나고 또 지나고.

 

그리고 오늘 오신 것이다. 오늘은 그때 못했던 위암검진(위내시경검사)을 하기로 예약하신 날이다.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첫째…) 근데 연락드렸을 때 서울 갔다 오시면 나오시기로 하시구선 왜 안 오셨어요?

-아니, 그런 연락은 못 받았는데?

그때 같이 오셨던 (남편) 분께 전화 드렸는데…

-그런 말 안 하던데.

아무튼(결론: 전달 안 됨. 뭐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둘째…), 근데 이건 뭔가요?

-변 받아 온 건데.

이거는 저희가 쓰는 통이 아니라서… (분변통을 꺼내 차트번호와 이름을 적으며) 이 통에 옮겨 담아 주시겠어요?

-이거? 이거 여기서 받아간 통이야.

예에? 여기서 받아가셨다고?

-여기서 줬다고.

여기서? 여기 검진센터, 5층에서요? 그날?

-그래, 여기서 받았다고.

저는 이런 통을 본 적도 없는데?

-에이, 여기서 준거라니까!

제가 드렸나요?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짐)

-아니, 여잔가? 아무튼 그건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여기서 받아 간 거야.

여기는 이 까만 통만 쓰는데요?

-여기서 줬다니까.

혹시 다른 데서 받으신 건 아니구요?

-다른데? 아닌데. 여기야, 바로 여기.

여기서는 이런 통을 쓴 적이 하~안 번도 없는데?

-몰라, 그거는. 근데 (확실히) 여기서 받았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했던가.

 

어쨌든 오셨으니까 다행이고… 요기다가 요거(설압자) 이용해서 옮겨 담아 주시고요. 화장실은 저기 복도 끝 오른쪽이구요. 담은 통은 저 파란 바구니에 놓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