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4화 걱정도 팔자
요즘엔 접수하고 나서 잠깐이나마 수검자의 차트를 본다. 차트가 익숙해지기도 했고 특히 수면내시경을 하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은 내용이 있는데 주로 수면 중 많이 움직이셨다, 수면 유도가 잘 안 되었다 같은 것이다. 잡아야 하니까 말이다.
OOO(여 69세)님이 오셨다. 69세? 65세 이상은 수면내시경이 위험할 수 있게 때문에 안 한다고 말씀드렸다. OOO님은 전에도 수면으로 했고 그냥은 절대 못한다고 하신다. 알고 보니 이미 원장님과 상담을 하신 뒤다. 나는 군말 없이 수면내시경 동의서를 받았다. 보호자로 두 아들과 손녀까지 3명이나 오셔서 걱정도 덜 되었다. 말을 꺼낸 김에 더 여쭤 보았다.
평소엔 어떠신데요?
-가슴이 뜨거워요.
네?
-작년에 남편이 췌장암으로 떠났지요. 아들 뒷바라지 한다고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이제 자리를 좀 잡으니 돌아가시네. 이제 좀 편하게 사나 했더니만…
가슴이 뜨겁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본다. 뜨겁다는 게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걸까?
그렇게 내시경 준비가 다 되어 시작하려는데 원장님이 다시 확인을 하신다.
저번에도 수면으로 하셨다구요? 언제?
-한 10년 되었지요 (에~? 나한텐 작년에도 수면으로 하셨다더니!)
수면제를 조금 쓰고 내시경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약간의 염증 외에는 별다른 큰 이상이 없었다. 역시 신경성?! 별것 아니라는 원장님 말씀에 아드님은 다행이라면서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씀 하신다.
-걱정도 팔자요. 엄니나 나나.
아버님 돌아가시고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 봐요?
-그니까 걱정도 팔자라니까요. 술 한 잔도 못하고 예민하고… 그렇게 똑 닮았어. 나도 술을 못하거든요. 둘째는 아녀요. 둘째는 말술에 술 먹다가 실려 간 적도 있다니까요. 나랑 엄니랑은… 후훗
췌장암이셨으면 고생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혼잣말로) 그 말을 듣는 게 아닌데…
엄청 고생하다 가셨지요.

두 아들 역시 아버님이 그렇게 되시고는 어머니만은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병원에 안 오시겠다는 걸 억지로 모셔 왔단다. 위는 특히 신경성이 많더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더 걱정도 팔자라고 어쩔 수 없다고 하신다. 별 이상이 없어서인지 OOO님의 표정도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백 번 걱정하느니 검사 한 번 하는 게 낫다는 걸 오늘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