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7화 모두 다르다
점점 익숙해지고는 있지만, 실수를 하거나 허둥대는 것은 여전하다. 수검자가 몰리면 더 그렇다. 나름 대기시간을 줄인답시고 서두르지만, 오히려 덤벙대기 일쑤다. 아~
검진이 썰물처럼 빠지고 한숨을 돌리는데 접수대 옆에 있는 소변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바구니가 다 차면 병리 선생님이 병리실로 갖고 가신다. 수검자가 많은 날은 소변을 받은 일회용 종이컵이 바구니 밖에 놓일 때도 있다.
바구니 안을 보았다. 소변 색깔이 다양하고 심지어 어떤 것은 때깔이 곱기도 했다. 사람은 정말 제각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라는 점은 같지만 똑같은 사람은 정말 없나 보다. 유전자가 같다는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다른 삶을 산다니까 더 말하면 잔소리 되겠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눈썹을 가진 인도 국적의 수검자가 오셨을 때다. 늘 하듯이 수면 내시경 보조를 하는데 정말이지 피부색만 다를 뿐 속은 똑같았다. 속을 들여다보면서 그나 나나 다 같은 사람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느꼈다. 같은 사람이지만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사람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 세상의 어지간한 문제는 풀리지 않을까.
차이를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듯한 이유를 들먹이며 혈액형, 생년월일, 체질, 성격, 취향 등등 종류도 많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분한다. 웃고 넘어가는 정도라면, 아니 조금이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분류도 쓸모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마치 진리인 양 모든 것의 판단 잣대로 삼는 사람을 만나면 답답함이 앞선다. 사람을 네 가지로 여덟 가지로 열여섯 가지로 서른두 가지로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사람은 각자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가 언젠데, 모두 달라서 소중할 텐데 말이다. 여기 소변 바구니도 그런 사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너무나 예쁘게 말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편견을 가진 나조차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모두 다르다.
※지금 검진을 받으러 가십니까? 그럼 병원에 가기 전에 화장실엔 들리지 마세요. 소변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안 나오는 소변 때문에 물을 마시고 또 마시면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당사자가 고역인 건 물론이고요, 옆에서 보는 이도 안타깝거든요, 진짜로! 억지로 마시는 물처럼 맛대가리 없는 것도 없을 겁니다.
아, 저기 저분도 물을 마시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