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09화 녹다
드디어 끝났다. 공고가 났을 때부터 불안의 연속이었는데 말이다. 제3주기 검진기관 평가 얘기다. 올해에 3주기 평가가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설마? 벌써? 라는 생각이었고 공고를 나왔을 땐 어찌나 하기 싫던지 도망가고 싶었다. 2017년에 2주기 평가가 있어서 내년에나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니까 뭐.
검진기관 평가는 일종의 감사처럼 그 기관이 검진을 제대로 하고 있나 평가를 하는 것이다. 검진의 질을 관리하기 위함이다. 그런 이유에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준비를 하다 보면 너무 까다롭다, 일을 위한 일을 만든다, 의원급 검진센터에 대학병원급 기준을 들이대는 것 같다 등등의 불만과 함께 요구하는 서류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나, 빠진 건 없나, 나 때문에 괜히 우리 검진센터에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등등의 불안이 머릿속에서 떠날질 않는다.
게다가 그놈의 2017년 3월에 평가를 마치고 4월 중순에 meditoon.net을 열고 그리고 두어 달 뒤 6월 말에 암 확진 판정을 받았었드랬던 나에게는 그냥 트라우마 비스무리한 게 있다는 얘기를 털어놓고 싶은, 누군가 좀 알아줬으면 하는….
아무튼 그때처럼 또 꾸역꾸역 또 마무리했다. 공단에 제출하고 나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평가가 올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일단 내 손을 떠났다는 후련함과 동시에 2주기 때와 똑같은 생각이 들어서 또 짜증이 난다.
미리미리 좀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