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42화 절주 필요
-저는 술을 안 마시는데 절주하라고 나왔어요. 이걸 창피해서 회사에 어떻게 내요.
000 님이 얼마 전에 했던 일반검진의 결과 통보서를 받고 문의 전화를 하셨다. 내용은 술을 안 마시는 데 절주가 필요하다고 언급이 되어서 황당하다, 말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분 얘기를 조금 전까지 권 샘(방사선사)과 하고 있어서 마침 000님 문진표도 들고 있었다. 문진표를 열어보니 음주 문진 칸에 ‘일 년에 1회’, ‘소주 1병’으로 되어있다.

근데 문진 칸을 보니까요. 저희가 여쭤보고 대답해주신 거 있잖아요. 술을 얼마나 드시냐는. 거기에 ‘소주 1병’으로 되어있어서 그런 것 같네요.
-아니, 어이가 없어요. 일 년에 한 번 회식 때 마셨다는 얘기에요. 평소에 한 잔도 안 해요.
그러게요. 근데 이게 저희가 정한 기준이 아니라 공단의 건강검진 기준이에요. 기준에 걸리면 통보서에 자동으로 언급이 되거든요.
-일 년에 한 번 마시는데 절주를 하라면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래서 저도 혹시나 해서 규정을 다시 찾아보니까 65세 미만의 여성은 회수에 상관없이 하루 4잔 이상이면 위험 음주로 걸리네요.
-그게 말이 돼요?
그러게요.
-…
… 그래서 이게 무슨 피검사를 해서 나온 결과도 아니고 여쭤보고 대답해주신 것이라서… 곤란하시면 그냥 안 드시는 거로 고쳐드리면 될까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해주세요.
네, 그러면 수정해서 다시 발송해 드릴까요?
-네. 그래 주시면 고맙죠.
네, 그럼 다시 보내 드릴게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신체 활동이나 음주, 흡연에 관한 언급은 모두 문진, 즉 어떤 검사의 결과가 아니라 오로지 수검자가 답한 내용을 근거로 한다. 게다가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기준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으로 결과가 나가다 보니 간혹 오해도 생긴다. 그럴 때는 주저하지 마시고 검진하신 곳으로 문의하시길. 그나저나 건강검진 기준으로는 술잔을 입에 대신 분을 포함해서 일단 술을 드시는 분은 대부분 위험 음주자다. 왜냐면…
남성(65세 미만): 정상-하루 2잔 이하, 주의-정상과 위험 사이, 위험-하루 5잔 이상 또는 주 15잔 이상
여성(65세 미만): 정상-하루 1잔 이하, 주의-정상과 위험 사이, 위험-하루 4잔 이상 또는 주 8잔 이상
65세 이상은 이 값의 반에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