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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살려 주세요!

오늘도 하루의 내시경 예약자 명단과 시간을 체크한다. 빈 시간대가 있다. 20분 간격으로 내시경 예약을 잡는데 빈 시간에는 주로 외래에 오셨다가 급하게 내시경검사가 필요해서 검진센터로 올라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OOO님(여 42세)도 그런 경우였는데 검진센터로 들어오실 때부터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수면내시경을 하러 오셨다는 말씀과 거의 동시에 모니터에 3층 내과에서 날아온 메시지가 보였다. ‘OOO님 수면 내시경 올라가요.’

 

OOO님이세요?

-수면 내시경 하려구요.

 

늘 하듯이 상의와 소지품을 사물함에 넣어 주시고 신발도 실내화로 갈아 신으시라고 말씀드렸다. 검은 비니도 같이 넣어두시라고 했다. 주저하다 비니를 벗는데 숱이 적은 파마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눌린 체였다. 힘없는 대답처럼 동작 하나하나도 모두 힘이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OOO님은 탁자에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계셨다. 보기 드문 자세였다. 병색이 짙지도 않아서 인지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상태가 궁금하기도 해서 OOO님의 처방 조회를 보니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선생님 제게 5분만 시간을 내주세요. 속이 쓰리고 아프다. 정신과에 많이 다녔다. 수면제를 먹는다... 등등’

 

내시경 준비가 되고 원장님이 손님의 병력과 현재의 증상, 약 복용 여부 등등에 대해 설명을 듣다가 제동을 거셨다.

 

수면제를 하루에 7알씩이나 드신다구요?

-네, 그게, 네

정말 수면제를 7알이나 드세요?

-그게 수면제랑 안정제랑…

합쳐서 드신다구요? 네. 그럼 검사 시작 할게요. 힘들지 않으니까 편안하게 받으세요.

드디어 수면제가 주사 되고. 

 

잘 잡아 주세요.

네에!

 

예상대로 움직임이 크긴 했지만 내시경 검사로는 큰 이상은 없었다. 원장님은 혼자 두지 말고 봐주라고 당부하고 가셨다. 나는 내시경실을 나오려다가 다시 OOO님에게 갔다.

OOO님 검사 끝났어요. 일, 일어나지 마시고 누워서 좀 더 쉬세요.

-원장니~임, 저 좀 살려 주세요.

네에? 저 검사 끝났어요.

-원장니~임, 저 좀 살려주세요. 저랑 딸애 밖에 없어요. 죽을 것 같아요. 살려주세요, 원장니~임. 저 죽으면 딸애는 어떡해요. 죽을 것 같아요. 자살 할지도 몰라요.

 

울면서 내 손까지 부여잡으시고는 한참을 하소연하셨다.

 

허걱! 당황스러웠다. 어쩌나…?

 

걱정 마세요. 별 이상이 없으시대요.

-살려 주세요. 네? 원장님!

 

보통 신경성이라 부르는 ‘기능성 위장장애’는 특히 불안 장애가 있는 분들께 흔하단다. OOO님도 대표적인 불안 장애의 증상이었다. 경험이 적은 나는 불안했다. 이런 분이 정말 자살이라도 하시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나중에 원장님 말씀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 제게 5분만 시간을 내주세요.’라는 얘기는 병원을 많이 다닌 것을 의미해. 병원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는 지 잘 알고 있는 것이지. 마치 외판원이 자기에게 1분만 시간을 내달라는 것과 비슷한 거야. 사실 이런 분은 위가 아니라 정신과 치료를 받으셔야 되는데…

 

부디 적절한 치료를 받고 쾌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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