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6화 연말, 독감이 무서운 이유

연말이다. 검진이 늘어난다. 일이 밀린다. 문의 전화도 잦다. 전화벨 소리에도 예민해진다.

어제 점심시간 한 시간 전쯤, 내과에서 70세 중반의 ○○○님이 혈액검사를 하러 오셨다. 잠시 기다리시면 3번 방(병리실)에서 부르실 거라 안내하고 나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소파에 앉으시며 독감 검사가 얼마냐고 물으셨다. 요즘 독감 때문에 검사 오시는 분은 정말 많지만, 검사 비용을 묻는 분은 없어서 좀 이상했고 아무튼 여기서 잠깐! ①내가 검진 결과를 입력하고 있고 상대방이 저쪽 소파에 앉으면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다. ②결제는 내과나 여성의학과에서 한다. 검진센터에서는 따로 수납하지 않아 몇몇 검사 말고는 정확한 액수를 모른다.

 

한 2~3만 원 할 겁니다.

-2만 원이면 2만 원이고 3만 원이면 3만 원이지 2,3만 원이 뭐래. (신경질이 잔뜩 묻어 있음)

여기가 수납 기능이 없어서 제가 잘 몰라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짐) 잠시만요! (내과에 전화해서 확인함) 2만 5천 원이랍니다.

-아니, 직원이 그것도 몰라!

(대꾸를 말자)

-해주슈.

독감 검사를 하시겠어요? 하시면 다시 내과로 내려가서 수납하셔야 합니다.

-해줘요.

(내과로 전화) ○○○님 독감 검사도 원하십니다. 하고 내려가실게요.

-어디는 무료라던데…

(싸늘하다, 혹시) 독감 검사가 아니라 독감 백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답이 없으시다. 얼굴이 안 보이므로 수긍하신 건지 더더욱 알 수가 없다.

 

백신은 4만 원이고 그건 내과…

-아까는 2만 5천 원이라매. (내 말을 짜르심)

그건 독감 검…

-에잇 안 해, 그깟 거 때려 쳐. (내 말을 또 짜르심)

23-16-연말 독감.jpg

이때 병리 샘이 ○○○님을 부르셨고 알지도 못하면서 2만 원이랬다 4만 원이랬다 그런다며 병리실로 가셨다. 갑자기 열불이 났고 아 증말~! 뭐라 뭐라… 후~ 그 분에게도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내 입에서 나온 소리다. 

잠시 뒤, ○○○님이 소매를 걷은 왼팔을 꽉 눌러 지혈하시면서 내 앞에 나타나셨고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내가… 너무 흥분해서… 미안합니다. (갑자기???)

아닙니다. 제가 죄송하죠. 갑자기 언성을 높여서 죄송합니다.

-바쁘신데… 괜히… 그만…

아, 아닙니다. 죄송합…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빠르게 몸을 돌려 나가셨다. “안녕히 가세요.”는 반자동 유리문을 넘지 못했다. 연말이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