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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한계

외래에서 오신 000(남 29세)님은 검진 대상이 아니어서 따로 접수를 하지는 않았다.

수면할 때 쓰는 진정제에 대한 설명인데 천천히 읽어보시고 여기에 성함하고 싸인을 해주세요.

-근데 저번에 수면이 안되서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계속 구토하고, 많이 움직이고…

움직이고 그런 게 다 기억나신다구요?

-네, 다 생각나요. 이렇게 쑥 들어와서 구토하고 진짜 힘들었어요.

아, 네. 여기서 하셨어요?

-아니요 저기 00의원에서 했었어요.

원장님께 말씀 드렸나요? 수면 유도가 잘 안된다고.

-아뇨. 말은 안했는데…

네에. 제가 검사 전에 말씀드릴게요.

 

외래 기록을 보니 별다른 코멘트가 없었다. 드디어 000님의 차례가 되었고 전에 수면 유도가 잘 안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원장님이 묻는다.

 

술을 많이 드세요?

- … …

거의 매일 드신데요. 그것도 소주 두 병씩이요.

- …

 

000님이 머뭇거리자 옆의 김샘이 대신 전했다. 수면제의 용량을 수정하고 검사에 들어갔다. 나도 긴장하며 000님의 손목을 잡았다. 검사가 시작되고는 별 움직임이 없더니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고비에 불구하고 그래도 버티고 버티던 나의 ‘잡는 자세’가 무너졌다. 손을 놓치고 다리가 올라오고. 우아~~악!

우여곡절 끝에 내시경을 마쳤지만 허탈했다. 뻐근한 팔을 주무르며 어느 부분, 어떤 순간에 자세가 흐트러졌나 다시 생각해보고 있었다. 잠시 뒤 000님이 나오셨다. 괜찮은지 여쭤보니 다행히 이번에는 전혀 기억이 없다.

000님은 기억의 한계를, 나는 제어의 한계를 넘어갔다. 더 이상의 전에 잡던 자세만으로는 무리다. 그렇다고 새로운 자세를 계발하는 것도, 도구를 이용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렇다면? 힘을 기르자!

 

피곤한 듯 졸고 있는 000님을 바라보며 운동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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