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96화 젠장, 봄이 갔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그 왜 그런 날 있지 않나. 하는 거 없이 바쁘고, 뭔가 산만하고, 사소한 게 엉키면서도 딱히 큰 사건은 없는, 그런 날 말이다.
본인이 어떤 검진을 하러 왔는지 모르셔서 내과와 검진센터를 오르내리셨던 분이 가시니 접수가 밀려있는데 나는 요것만 하면 된다고 재촉하시는 분이 오시고 이 와중에 공단에서는 공문을 확인해달라고 연락이 오고, 수화기는 내려놓자마자 울리고, 소변만 다음에 하면 안 되겠냐고 사정하시고, 내가 안 보는 사이 분변을 놓고 가셨고, 급하다고 우편 말고 전화로 알려주면 결과지 찾으러 오시겠다던 분은 전화를 안 받으시고, 독감검사는 계속 올라오고….
이따가 오후에는 지난주에 했던 MRI 검사의 결과를 들으러 간다. 3개월마다 하던 것을 4개월로 간격을 늘렸고 그 첫 번째 검사의 결과다. 지금 검진센터는 에어컨을 틀었을 정도니 결과를 보고 돌아오는 오후에는 이미 봄이 가고 없을 것 같다. 3개월마다 할 때는 계절이 변하는 경계에 닿아 있어서 바뀌기는 해도 의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넉 달이라는 간격은 딱 겨울, 딱 봄, 딱 여름 이런 식이라서 그런지 그렇지 않아도 후다닥 가버리는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그만 욕이 나왔다.
아, 1년 전 봄은 참 경이로웠는데…. 그나저나 이제 제라늄은, 아쉽지만 놔 줘야겠다.